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약 30명의 전문 피지컬 코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국내에서 축구 피지컬 코치만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가자들은 피지컬 코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토론하며 한국축구에서 피지컬 코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2019 피지컬 코치 워크숍이 12월 5일 파주 NFC에서 개최됐다. KFA가 최초로 피지컬 코치만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연 것은 최근 각급 대표팀과 구단에서 피지컬 코치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훈련 노하우를 공유하고 트렌드에 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한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오전 10시부터 약 6시간 동안 진행된 워크숍에는 KFA 전임 피지컬 코치들을 비롯해 K리그, WK리그, 중고교 팀 등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전문 피지컬 코치 약 30명이 초청됐다.
참가자들이 KFA가 지급한 단체복으로 갈아입고 NFC 강당에 모이자 개회식이 시작됐다. 김판곤 KFA 부회장 겸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과 미하엘 뮐러 KFA 기술발전위원장도 참석해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김용주 KFA 축구과학팀 팀장은 축구과학팀의 역할을 소개하며 “피지컬 코치라는 직업이 한국축구와 스포츠과학을 연결하는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각급 대표팀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등록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참가자들을 북돋았다.
경험에서 과학으로
본격적인 워크숍은 김용주 팀장이 프로젝터에 참가자 한 명, 한 명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을 띄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진 주제 발표 시간에는 오성환 KFA 전임 피지컬 코치가 연사로 나서 ‘피지컬 코치, 경험 그 이상의 것’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축구에서 피지컬 코치가 갖는 역할과 자질이 시간의 흐름에 따랄 변화하고 발전해온 것에 대해 설명했다.
오성환 코치는 “피지컬 코치님들만을 앞에 두고 발표하는 것은 처음이라 영광스럽다”며 운을 뗐다. 그는 2002 한일월드컵 전후로 피지컬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이를 공부하는 학생들 역시 늘어났고, 그들이 현재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1세대 피지컬 코치들, 즉 이번 워크숍의 참가자들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990년대에도 피지컬 코치는 존재했고, 우리는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과거의 피지컬 훈련과 현재의 피지컬 훈련의 차이는 그 훈련이 이뤄지는 근거에 있다. 과거에는 경험에 근거해 현상학적 측면에서 피지컬 훈련이 이뤄졌다. 2000년대 들어 스포츠과학의 영역이 부상했고, 현재는 몸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분석해 피지컬 훈련을 구성하게 됐다. 오성환 코치는 “어떤 이론이나 모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분야는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질 좋은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SCI(과학인용색인)급 저널을 검색해보는 방법을 추천했다. 우수하고 신뢰도 높은 논문을 읽고 활용하는 한편, 최신 피지컬 훈련법의 트렌드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영어로 쓰인 논문이라 영어 독해 능력은 필수다.
강연 후 이재홍 FC서울 피지컬 코치는 “KFA 차원에서 피지컬 코치들의 컨퍼런스 참가나 저널 구독에 대한 정보 공유와 지원을 해준다면 더 많은 피지컬 코치들에게 좋은 기회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김용주 팀장은 “피지컬 코치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면서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유하다
점심 식사 후에는 그룹별 토론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5개 그룹으로 나뉘어 한 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오성환 코치는 “첫 만남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훈련법에 대한 내용보다는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것에 중점을 줬다. 프로그램 내용 면에서도 원론적인 부분부터 다루면서, 우리가 피지컬 코치로 일하면서 느끼는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5개 그룹은 가능한 다양한 소속의 피지컬 코치가 묶일 수 있도록 구성됐고, 때문에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피지컬 코치로서의 경험과 고총들에 공감하며 금세 친해져 적극적으로 그룹 토론에 임했다. 그룹 토론의 주제는 피지컬 코치의 역할, 피지컬 코치의 자격 및 자질, 피지컬 코치의 코칭스태프 내 위치, 피지컬 코치가 개선하고 발전해야 할 부분이었다. 이를 과거와 현재에 어떻게 달라졌고, 미래에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로 나누어 토론했다.
토론을 마친 후에는 그룹 별로 한 명씩 무대 위에 올라 토론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많은 그룹들이 피지컬 코치의 역할이 과거에는 모호했다는 점에 공감했다. 피지컬 코치의 전문성을 인정받기 보다는 선수들의 워밍업을 담당하는 ‘막내 코치’ 정도의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선수들을 포함한 다른 팀원들에게 코칭스태프라기보다 지원스태프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점차 과학적인 피지컬 훈련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피지컬 코치의 팀 내 위치도 전보다 올라갔다. 이 점 역시 많은 참가자들이 공감했다. 이에 따라 파지컬 코치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역량에 대한 기대치도 올라가고 있다. 관련 지식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공부하며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 데이터 분석 능력을 키우는 등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스스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러 참가자들이 입을 모았다.
또 한 가지 주요 화두로 떠오른 것은 소통능력이었다. 피지컬 코치가 다른 코칭스태프들과의 소통에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통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지식을 갖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경험 많은 베테랑 감독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참가자는 “그동안 9명의 감독님과 함께 했는데 스타일이 모두 달랐다. 다양한 관점의 다양한 철학을 가진 감독님들에게 내 의견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도 잘 연구해야 한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소통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토론 결과 발표 후 이어진 송경섭 KFA 전임지도자와의 인터뷰 시간에도 핵심 주제였다. 송경섭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과 프로팀을 모두 맡아본 지도자다. 그는 피지컬 코치의 자질을 묻는 질문에 “전문 지식을 갖추는 것은 물론 기본이다. 그 다음은 인성이다. 팀 안에서 잘 융화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함께 일하다 보면 서로 어디까지 권한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마련인데, 서로 존중하며 충분한 대화를 한다면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다. 절대 아집이 생기면 안 된다”며 소통능력을 강조했다.
첫 피지컬 코치 워크숍, 그 자체로 동기부여
국내 최초의 피지컬 코치 워크숍은 다음을 기약하며 마무리됐다. 2020년 12월에 두 번째 피지컬 코치 워크숍이 열릴 예정이다. 오성환 코치는 “굉장히 뜻 깊은 자리였다. 개인적으로도 (외국생활을 오래한 탓에) 국내에 아는 피지컬 코치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돼 기쁘다. 이번에는 처음인 만큼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것에 집중했지만 다음 워크숍에서는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해외 전문가의 초청 강연도 준비할 생각이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점점 더 발전된 워크숍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피지컬 코치 3년차인 안정혁 용마중 코치는 “아는 피지컬 코치들끼리 밖에서 삼삼오오 만나거나 연락하는 정도였지 이렇게 한 자리에서 모일 기회는 없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새롭게 만나게 된 분들도 많아 좋다”고 말했다. 그는 “피지컬 코치로서 앞으로 해나가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이미 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부여가 많이 됐다”며 웃었다.
박효준 포항스틸러스 피지컬 코치는 브라질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온지 1년차다. 그는 “한국에 와서 완전히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마침 좋은 계기를 만들어주는 자리여서 즐거웠다. 다른 코치님들과 피지컬 코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고충이나 고민들을 나눌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한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동지애를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