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 가는 길목 ‘청산도’ 류 시 호 / 시인 ? 수필가
지난 봄방학에 공동연수로 동료교사들과 완도를 거쳐서 청산도에 갔다. 청산도는 날씨 때문 2번이나 완도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지 못한 곳이다. 완도는 장보고 장군의 청해진이 있고 미국 프로골프에서 맹활약을 하는 최경주의 고향으로 증평읍에서 같이 근무한 C여선생도 생각난다. 그는 완도인근 외딴섬이 고향으로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에서 대학을 다녀 충북에서 가정을 이룬 부지런하고 열정을 가진 동료 교사였다.
완도에서 뱃길로 45분 거리인 청산도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촬영되면서 관광명소로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드라마 ‘봄의 왈츠’도 이곳에서 만들었다. 봄이 되면 섬의 들판을 유채꽃과 청보리가 뒤덮고, 나지막한 돌담을 따라 노란색과 초록이 조화롭게 절경을 이룬 멋진 곳이다.
이곳에는 고인돌 유적이 많이 있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산 지형을 따라 진흙으로 메워 물이 새지 않도록 만든 ‘구들장 논’과 계단식논(다랑이 논)이 유명하다. 그리고 돌담 덕분에 자연미가 흐르고 농촌 풍경이 여유로워 보여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선조의 지혜가 담긴 구들장 논을 보존하기 위하여, 지난 1월 국가중요 농업유산1호로 지정하였다.
남도에서는 ‘초분’(草墳)이라는 특별한 장례가 청산도와 진도 등 일부 섬에 남아있다. 작년 국립고궁박물관 연수 때 장례문화의 국내 최고권위자인 정종수 관장의 강의에서도 초분에 대하여 강조한바가 있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3년간 풀이나 소나무가지로 덮어두는 가묘(假墓)로 두었다가 뼈만 매장하는 장례법으로 다큐멘터리 감독 정수웅이 1977년 다큐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든 하프상’ 국제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춥고 길었던 겨울이 가고 꽃샘잎샘이라니 절기의 흐름은 속일 수도 이길 수도 없다.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던 사람에겐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새로운 계절, 새봄을 맞이하여 청산도에 다시 갈려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인생이란 가끔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하고 싶은 것하며 살아야 아름다운 삶을 유지할 수가 있다.
겨우내 얼어 있던 생명들이 봄을 재촉하는 비를 맞아 생명의 고동을 울리고 있다. 문지방에 턱을 괴고 바라본 하늘에는 봄기운이 감돌고 화단의 나무에는 새잎이 돋고 있으며, 가느다란 풀꽃들이 풀 향기 한 움큼을 코끝에 뿌려줄 것 같다.
봄의 기운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것을 보고, 봄을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라고 하는가 보다. 흔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풀잎이 속삭이고 겨우내 웅크렸던 만물이 봄을 맞아 용수철처럼 밖으로 튀어나오면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올 것 같다. 꽃샘추위를 이겨낸 봄꽃을 보노라면 누구나 행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에 제비들이 찾아오고 씀바귀도 자라서 우리의 입맛을 돋우어 줄 것이다. 유채꽃과 청보리가 우리에게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단장을 하고 기다릴 터인데, 바람에 잎을 다 잃기 전에 청산도에 가야겠다. 봄으로 가는 길목 청산도야! 노랑과 초록의 빛을 포기하지 말고 새잎을 틔우며 봄의 문을 활짝 열어 주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