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 4중주와 봄의 향연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지난 2월 하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봄을 부르는 실내악의 공연을 즐겁게 보았다. 체임버홀은 국내 대표적인 실내악 전용홀로 유명하다. KBS 박지현 아나운서의 해박한 클래식 곡의 해설은 우리를 더욱 친숙하게 했고, 서울현악4중주단이 ‘서울 스트링 콰르텟’이란 실내악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현악4중주단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협연으로 부드럽고 감미로운데, 연주곡을 보면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슈트라우스의 피치카토 폴카, 드보르작의 아메리칸,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등 우리의 귀에 익숙한 곡들이 많아서 더욱 신이 났다.
영국 수필가 월터 페이트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했다. 음악에는 모든 아름다움과 조화로운 요소가 녹아들어 있고, 청중 누구나 감동 할 수 있는 극적인 긴장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전문 음악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좋아하게 된다.
연녹색 잎사귀로 된 악보에 바이올린과 첼로가 봄의 향기를 연주하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한 장의 음악이 된다. 우리에게 음악은 즐거움의 바다이며, 바이올린과 첼로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도구가 된다.
예술이란 인간의 삶에 녹아들어 영혼을 위로하고 답답한 가슴에 감동을 느끼게 하는 일상의 동반자이다. 삶이 공허하고 해답이 없어 벼랑 끝으로 몰린 시간에, 아름다운 음악으로 마음을 감동시키면 또 다른 삶의 의욕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필자도 음악이 가진 긍정과 희망의 힘을 믿고 있다.
삶이 고단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음악은 마법과 같은 힘으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음악과 예술의 본질은 슬픔이며 눈물이 나올 정도가 돼야 승화된다. 눈물은 평범한 사람의 삶에도 변화를 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이 되기도 한다.
평생 감성을 잘 유지하고 산 사람에게서는 인생의 향기가 우러난다. 감성을 자극하려면 좋은 예술작품을 가까이하며 살라고 권한다. 모두들 바쁘게 살지만 감성을 유지하려면 자연의 향기를 느끼고, 즐거운 음악을 듣고 풍광을 맛보면서 살아야 아름다운 삶이 된다. 아름다움은 젊음도 흉내 낼 수 없는 멋과 아우라가 있다.
봄옷 갈아입은 초록 나무가 흥얼거리고 봄 햇살에 핀 목련과 벚꽃, 매화들이 햇살과 함께 꽃의 온기로 가득 채운다. 봄을 시샘하는 하늘도 휘파람 불며 찾아오고 봄바람도 소리 내며 반겨준다. 퇴계 선생은 맑은 꽃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내면의 청진(淸眞)한 표상을 보았다고 하며, 그래서 매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봄꽃이 아름다운 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라는 특별한 직책 때문이다. 추위를 견뎌 낸 강인함과 두려움 없이 눈밭에서 꽃을 피우는 투지, 그러면서도 기품이 있다. 봄을 알리는 실내악은 고전의 낭만성, 현대 음악의 자유로움을 담아 우리에게 매력을 선사한다. 끝없이 순환하는 생명 속에서 봄꽃의 개화가 더 큰 감동을 주는 요즘, 실내악이 봄꽃의 향기를 날리고 있다. 우리 모두 봄의 향연을 보고 들으면서 즐겁게 살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