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이사장 유경상)과 안동민속박물관(관장 이희승)이 공동조사를 통해 90년 세월을 품고 있는 안동역(安東驛)에 관한 기록지 [그곳에 역이 있었네]를 발간했다.
현재의 운흥동 안동역사(驛舍)는 복선전철 개통을 앞두고 2021년 즈음 송현동에 신축되는 역사(驛舍)로 이전을 앞두고 있다. 안동역과 광장이 지니고 있는 시공간적 유무형의 역사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90년 운흥동 안동역사(驛舍) 시대가 종료되는 시기를 맞아 경북선(慶北線) 당시의 ‘경북안동역’ 영업개시부터 시작해 최근까지의 시대별 변천사, 기차역과 관련된 교통문화와 인물 발자취, 주요사건, 주요 사진 등을 수록했다. 시대 및 테마별로 수집한 사진자료는 함께 묶어 화보처럼 볼 수 있게 편집했다.
안동역 기록지 구성은 안동역 연표, 안동역 등장과 변화(前期, 後期), 안동역 기억에 대한 구술, 사진도록 등으로 묶여져 있다. 시간대 별로 안동역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대하소설 ‘변경’(이문열작가) 속에 등장하는 60년대 안동시내 풍경과 함께 지역사에 큰 충격을 준 대형사건(신하사 문화극장 수류탄 투척사건)에 대한 히스토리도 담아냈다. 안동역에 근무했던 역무원, 보선직원, 소화물담당, 부부 근무자, 공안경찰 등의 구술증언을 통해 당시 무임승차, 소(牛)운송, 한국전쟁 등 철도관련 시대상과 생활상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일제는 조선의 교통망을 장악하는 것을 식민 통치의 첫걸음으로 계획했다. 석탄과 철이 결합된 철도는 근대문명의 축복이었지만, 식민시기 철도는 강산(江山)과 백성에게는 억압과 착취라는 제도적 폭력이었다. 일본 헌병과 관리를 실어 나르면서도 독립운동가와 식민지 백성을 함께 동승시켰던 양날의 칼이었다. 오욕과 영광의 역사를 관통한 안동역에서 지역주민들은 신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환호하기도 했다.
1931년 시내 운흥동 낙동강변에 세워진 안동역은 근대 원도심 형성의 중심축이었다. 안동역은 경북선(1931.10.5. 김천~안동구간 개통)시대, 안동역사 증축공사(1936.5.27. 7만평용지 증축공사, 관사·철도공원 용지 4만5천평 매입), 경경(京慶)남부선(중앙선) 건설안동사무소 설치(1936.8.) 등의 궤적을 지니고 있다. 1942년 4월1일 경성~경주 전 구간 개통식이 안동역에서 치러졌으며,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는 안동철도국이 시대를 함께했다. 안동철도국은 중앙선과 영암선, 함백선, 충북선 구간의 53개 역을 관장하며 당당한 위상을 높였던 교통의 주요거점 기관이었다.
그 과정에서 행정기관, 금융, 상권, 교육 등 현재 안동원도심이 형성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경북선과 중앙선 기차의 도착·발차 과정에서는 각종 사건의 주요무대였다. 근대시기 유일의 교통중심이자 이에 의존한 역세권이 형성된 생활사의 생생한 공간이었다. 철도를 통해 안동은 경북의 교육중심도시로 위상을 갖게 됐으며 북부권 거점도시로의 성장을 거듭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당시 안동역에 다양하게 종사했던 인물들은 다양한 기록 자료를 제공했고, 당시 기차역을 둘러싼 풍부한 기억을 구술해 주었다. 특히 안동역 90년사 중 ‘안동철도국 시대(1950년~1963)’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피력했다. 안동철도국은 전국의 6개 철도국 중 하나였고, 안동철도국에는 8개 과가 존재했다. 관할구역은 중앙선(영천시 화산역~원주시 반곡역), 영암선(영주시 영주역~봉화군 석포역), 함백선(제천시 제천역~정선군 함백역), 충북선(충주시 목행역~제천시 봉양역)으로 총 4개의 선로를 관리했다.
90년 세월의 운흥동 안동역사(驛舍)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2020년 현재 우리는 ‘그곳에 안동역이 있었네’를 통해 사라져 간 과거형 사실로만 기억하기보단 추억으로 기록지를 마주하게 될것이다. 빠트린 여백과 못다한 퍼즐조각은 추가조사를 통해 보완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