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두얼굴 발행인 박광옥
우리의 삶이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안에 감춰있는 군더더기는 보이지 않고 미끈한 껍데기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이 인간의 속마음이 아닌가 싶다.
맑고 투명한 유리창을 바라본다 해도 커튼이 가리고 있다면 그 안을 볼 수 없듯 고백하지 못하는 진실은 눈을 감는 그 날까지 두꺼운 어깨너머에 잠들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화려한 옷치장을 한다 한들 겉과 속이 다른 이유는 인간의 본성인 것을 나 자신도 그러함을 누굴 탓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투명한 유리알처럼 맑고 밝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를 신뢰하고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할 뿐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수직의 관계에서 수평의 관계로 변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수평의 관계로 상하관계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디다.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끝이 없는가 보다. 아니 답이 없는 듯하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특히 남, 녀의 관계는 평등하기에 공동체에서는 투명하고 건강해야 한다. 일부 높은 자리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높은 분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요즘 주택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하였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재테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현상이 오늘 어제 일은 아니다. 산업사회가 급변하게 발전하며 삶이 윤택해진 결과가 낳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제점이다.
문화와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일 필요한 시기가 이미 와있었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당국은 이러한 정책을 만들 기회조차 없어 보였다.
은행이자가 한자리 숫자로 떨어지기 전에 시중에 넘치는 재원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했다.
스포츠경기로는 그들의 눈높이에 들지 않는다
빈부격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경쟁에서 시장이 자유롭게 소비가 일어나고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급승용차의 경우 굳이 외제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고급 차와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차이를 느끼기에 외제 차를 구매하게 된다.
좋은 곳에서 생활터전을 마련하고 싶은 사람, 그 누구나 바라는 욕심이 아닐까?
사람들의 본성은 이렇다.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고 작은 아파트를 분양받고는 밤잠을 설치는 기쁨에 환호를 하고 그 이후에는 방이 서너 개 딸린 넓은 곳으로 이사 하고 싶은 욕심은 그 누구나 있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은 욕망 그 누구나 갖고 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절제와 참음을 통해 성인으로 그 참됨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두 얼굴은 언젠가는 겉과 속이 보이게 되어 있다. 아무리 감추어도 숨겨 놓았어도 보이게 돼있는 것, 바로 비빌은 보이게 된다.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가슴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