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시선집중, 임 장순기자] “안정보다는 도전을 택하고 싶다. 아직 젊으니까.”
30세 젊은 지도자 이민영 감독은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선수생활을 하던 중 일찌감치 지도자로서의 꿈을 꾼 그는 스무 살에 첫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2011년부터 초·중·고 여자축구부 지도자를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가장 큰 도전은 2018년에 시작됐다.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동티모르에서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동티모르에서는 앞서 영화 ‘맨발의 꿈’으로 유명한 김신환 감독이 20년 가까이 남자축구 유소년팀을 이끌고 있다. 이민영 감독은 지도자 교육을 받으며 생긴 김신환 감독과의 인연으로 2017년 동티모르 남자 U-19 대표팀 전지훈련 당시 코치를 맡았다. 이 경험은 이민영 감독을 동티모르 현지로 이끌었다. 김신환 감독과 함께 KFA의 지원을 받아 해외 파견 지도자로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KFA 해외 지도자 지원 사업은 동티모르를 비롯해 부탄, 몰디브, 타지키스탄 등 상대적으로 축구 인프라가 낙후된 국가에 한국인 지도자를 파견하거나 지도자 급여를 지원함으로써 해당 국가의 축구 발전을 돕고 지도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이민영 감독은 2018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동티모르축구협회와 일했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최근 2년의 재계약을 맺고 다시 동티모르로 돌아갈 계획이다.
첫 2년은 고난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동티모르 남자 유소년팀 코치로 시작했지만 곧 갓 출범한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됐다. 이민영 감독은 “처음에는 7~8명으로 시작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경험이 전혀 없는 친구들이라 공을 차주면 잡지도 못하는 정도였다. 주위에서 ‘이거 되겠느냐’며 걱정했고 나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밝혔다.
결론은 “하니까 되더라”였다. 이민영 감독은 “체계적인 훈련을 처음 받는 친구들이라 어려워했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선수들 스스로도 실력이 느는 것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니까 친구를 데려올 정도였다. 1년이 지나니까 42~43명 정도가 모였다. 팀을 하나 만드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 지원자 중 경쟁을 통해 선발을 해서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티모르 여자축구의 태동을 함께한 이민영 감독은 그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2019 AFF(아세안축구연맹) 여자챔피언십에서 싱가포르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 것은 동티모르 여자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이나 다름없다. 동티모르 여자 국가대표팀의 첫 승리이기 때문이다. 이민영 감독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선수들이 그를 둘러싸며 환호하는 순간의 영상을 한국에 돌아와서도 셀 수 없이 돌려봤다.
이민영 감독은 “첫 승 이후에 동티모르축구협회 담벼락에 기념벽화가 그려졌다. ‘여자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쓰인 벽화가 가장 뭉클했다. 동티모르는 여자에 대한 편견이 한국보다도 심한 나라다. 그런 환경에서 축구가 좋아 모인 여자들이 국제대회에 나가 성과를 냈고, 그것을 통해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기뻤다.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여자 어린이들이 분명 더 많이 생길 것 같아 마음이 벅찼다”고 말했다.
2년 재계약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다시 동티모르행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민영 감독은 “거절도 몇 번했지만 동티모르축구협회에서 내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했다. 나를 필요로 하고 믿어주는 곳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티모르축구협회가 여자축구 발전에 대한 의지를 크게 갖고 있다. 지난해에 여자 U-15 대표팀을 만들었고 리그도 창설됐다. 그 과정에 내가 영향력을 갖고 한몫을 할 수 있어서 뜻 깊다. 이제는 얼른 돌아가서 더 잘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며 웃었다.
풀을 깎고 돌을 골라 가며 훈련을 해야 하는 척박한 환경이지만, 이민영 감독은 그런 고생과 수고를 통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말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도전이 즐겁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내게 안정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30대 초반인데, 젊을 때 더 도전해 봐야하지 않겠나.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우고 싶다. 머물러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며 다부진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