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시선집중, 임 장순기자] 재일교포 3세 여자축구선수 강유미는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이 익숙하다. 추석 연휴에 휴가를 받게 되면 그는 보통 숙소에 남아있거나 친구 집에 가서 추석을 보냈다고 한다. 올해는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본에 계시는 부모님을 만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강유미는 지난해 2019 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에 참가했는데, 당시 딸을 응원하기 위해 프랑스를 찾았던 부모님과 만난 이후 1년 넘게 영상통화로만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강유미는 “어쩔 수 없다”며 웃었지만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집에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너무 답답하다”며 하루 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랐다.
2020년은 강유미에게 중요한 해였다. 5년 동안 몸담았던 팀인 화천KSPO를 떠나 경주한수원에서 새 출발을 했기 때문이다. 이적 첫 해에 코로나19 사태라는 유래 없는 상황을 만나 고생도 했지만, 강유미는 차분히 새 팀에 적응해가며 경주한수원이 WK리그 2위를 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송주희 감독님만 믿고 왔죠.”
사실 강유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해외진출을 추진했다. 여러 해외 리그를 알아보던 중 고향인 일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를 준비하던 차에 경주한수원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다. 고민하던 중 경주한수원행을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송주희 감독의 존재였다. 송주희 감독과 강유미는 지난해까지 화천KSPO에서 코치와 선수로 함께 했다.
“축구를 더 배우고 싶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화천KSPO에 5년 동안 있다 보니까 너무 편안해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해외진출을 알아봤고 일본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경주한수원 감독님이 송주희 선생님이라는 거예요. 아, 그렇다면 나는 경주한수원으로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강유미는 송주희 감독에 대해 “인간적으로 정말 좋은 분이다. 화천KSPO 시절에도 힘들 때마다 찾아가서 많이 기댔다. 늘 힘이 되고 감사한 분”이라고 밝혔다. 송주희 감독 체제 하의 경주한수원에서 강유미는 그가 해외진출로써 얻고자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는 것들이 많아요. 축구가 새롭고 재미있다고 느껴져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선수들이 저마다 능력이 좋기 때문에 선후배할 것 없이 모두에게서 배울 점이 많아요. (전)은하, 아스나, (이)세진 언니, (윤)영글 언니, 신입 선수들까지 다 잘해요.”
화천KSPO 시절 단연 에이스라 할 만큼 팀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강유미이기에 보다 선수층이 두터운 경주한수원에서의 경쟁체제가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유미는 “몇 경기를 뛰느냐 보다는 몇 분을 뛰더라도 팀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각오”라며 다부진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강유미는 올해 WK리그에서 주로 교체로 출전해 활약했다.
“몇 분을 뛰더라도 제가 가진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어요. 경기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동료들이 제가 뛰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야한다고요. 그래서 짧은 시간일지라도 저다운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 같아요.”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강유미는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전후로 주목받았다. 월드컵을 앞에 둔 깜짝 발탁과 함께 재일교포 3세라는 독특한 정체성,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직선적인 돌파와 정확한 크로스 능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강유미는 조별리그에서 2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여자축구 역사상 첫 16강 진출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강유미는 부상이라는 악재를 만났고, 긴 시간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재작년에 아킬레스건 수술을 하고 거의 1년 동안 경기를 뛰지 못했어요. 작년에 복귀하고 나서는 안 다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죠. 수술 이후로 아직 몸 상태가 백퍼센트라 느낀 적은 없지만 확실히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걷지도 못했을 때를 생각하면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제 플레이가 빨리 나오지 않더라도 뛸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자고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대표팀 발탁에 대한 바람도 다소 내려놨던 강유미지만 올해부터는 조금씩 욕심을 내보겠다는 다짐이다. 우리나이 서른인 강유미는 “엄마께 나는 욕심이 없다고 했다가 혼났다”면서 웃었다. 그는 “엄마께서 ‘너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 아니니까 기회는 또 온다’며 욕심을 가지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내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강유미는 이 깨달음 덕택에 부상으로 인해 움츠렸던 어깨를 필 수 있게 됐다.
“인천현대제철을 잡을 팀은 경주한수원밖에 없죠.”
강유미의 올해 목표는 WK리그 우승이다. 올해 WK리그는 정규리그 3라운드만을 남겨두고 있고, 경주한수원은 승점 4점 차로 선두 인천현대제철을 쫓고 있다. 정규리그에서 1위를 놓치더라도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결정전에서 인천현대제철을 만나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다. 남은 정규리그 3라운드 중에서도 두 팀의 맞대결이 있어 관심을 모은다. 경주한수원은 이미 13라운드에서 인천현대제철에 2-0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당시 강유미가 골을 기록했다.
“경기 전날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인천현대제철을 잡을 수 있는 팀은 우리밖에 없다고요. 인천현대제철을 누군가는 잡아야하는데, 그게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고요. 저도 그래요. 인천현대제철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주한수원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천현대제철은 화천KSPO 이전에 강유미가 2년간 몸담았던 팀이기도 하다. 강유미에게 인천현대제철은 “정말 잘한다”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대인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꼭 이기고 싶은 존재다. 강유미는 “지난 승리로 자신감을 얻었다. 넘사벽은 아니구나, 해보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감독님을 비롯한 선수단 전체의 의지가 강하다”며 끈끈한 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모든 코칭스태프분들과 관계자분들이 선수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