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책임
신영숙(수필가)
‘Back To The Future(미국,1985)’ 타임머신을 만든 박사와 주인공이 과거로 시간으로 떠나는 모험 영화다. 박사와 주인공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는다. 현재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약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 과거를 바꾼다면 현재가 얼마나 달라질까 궁금하기는 하다.
중3 딸아이의 사춘기가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딸과 나누는 대화는 의도와 무관하게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대화는 말다툼으로 끝을 맺었고, 아이는 어김없이 다시는 엄마와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다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점점 딸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두려워졌다. 상황에 대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제시했던 조언을 엄마의 잔소리라고 싫어했다. 자신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면 당황스럽고 화도 났다. 자식의 잘못된 행동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날 이후 나는 아이에게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반복되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꼭 해야 하는 말은 분명하게 한 번에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로가 감정적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좀 더 뒤로 물러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조금씩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자신의 속마음까지 털어놓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신중해졌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경우가 생기면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괜히 조언을 했다가 상대방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방어적 태도를 취했다. 누군가 내게 해준 말이 있다. 물어오는 말에 답을 하면 조언이 되고, 묻지 않았는데도 먼저 꺼내면 참견이고 오지랖이 되니까 상대방을 아껴서 하는 말일지라도 그 사람이 원치 않으면 의미 없는 말이 되니 하지 말라고……. 그래서 몇 번이고 나서서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생각만 하고 간섭하지 않았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진학을 두고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나 역시 20대 때 진로 선택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선택 후의 과정과 결과를 건너뛸 수도, 넘겨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시기에는 선택이 어려우며 확신을 가지기는 더욱 쉽지 않아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딸에게 말해주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이 된다면 내가 그 일을 간절하게 원하는지, 과정을 감내할 수 있는지,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깊게 들여다보라고 말해주고는 얼마 전 책에서 읽었던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성인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북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인디언은 성인이 되면 매우 지혜롭고 교훈적인 성인식을 치른다. 보통 성인식이라고 하면 이제 20세 성인이 된 청년들의 용맹함과 힘을 테스트해 보는 사냥이나 격투, 모험 같은 통과 의례가 주를 이루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성인식에 참여할 아이들을 넓고 긴 수 십 미터 길이의 옥수수밭으로 데려가서 한 줄로 서서 차례대로 한 명씩 지나가게 한다. 그리고 가장 크고 잘 여물었다고 생각하는 옥수수를 딱 한 개만 따게 하는 것이다. 너무나 쉬운 일에 아이들은 웃으면서 몰입한다. 이때 어른들은 조건을 제시한다. 옥수수를 보면서 한번 지나간 밭고랑은 다시 되돌아갈 수 없고, 옥수수를 골랐으면 다른 큰 옥수수가 나타나도 바꿀 수 없다. 당연히 아이들은 각자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하여 매우 신중하게 옥수수를 살피며 걸어간다. 그리고 밭고랑이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가장 크고 잘 익었다고 생각하는 옥수수를 한 개씩을 따서 나온다. 과연 자기가 딴 옥수수가 최고일까, 다른 친구들보다 잘 선택한 것일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단지 경험이나 지식,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가장 큰 옥수수일 수도 있고, 작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신고식이다. 옥수수를 따기 전 옥수수밭을 잘 둘러 봐야하고 마음에 드는 옥수수를 땄다면, 더 괜찮은 옥수수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미련을 두지 말고 내 길을 가야만 한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씩 후회를 한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의 현실을 탓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했던 모든 선택에 대해 뒤돌아보지 말고 내가 처한 현실을 책임감 있게 헤쳐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선택이 무엇이든, 최선의 선택으로서 뽑은 자신의 옥수수를 최고의 선택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것을 이 인디언 부족은 성인식을 통해 가르쳐주고자 한 것이다. 나의 현재를 최선으로 만들어가라는 인디언 부족의 지혜로움과 현명한 의식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오늘은 뭘 입고 나갈지, 뭘 먹을지, 누굴 만날지, 어떤 일을 먼저 할지……. 선택은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내가 결정한 선택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 것인지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갔다. 한 친구가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만약 인생의 한 시기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지 물어왔다. 짧은 순간에 인생의 여러 선택의 순간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때 내가 결혼이 아닌 공부를 더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져 있을까,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영화 ‘Back To The Future’ 명대사가 떠오른다. “아무도 정해진 미래는 없어,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거야.”
약력
2020년 수필문학 등단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수필문학추천작가회, 문학동인 글풀 회원
공저 『바람여행』 『강물로 가는 시간』 『인연을 깁다』 외 다수
現, 안산시청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