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산성(婆娑山城)과 명성황후 생가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얼마 전, 여주시 대신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제5대 파사왕 당시 축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성곽, 산성, 사적을 둘러보았다. 파사산성은 여주시 대신면과 양평군 개군면 경계에 해발 230m의 파사산 정상에 있다. 이 산성은 6세기 중엽 이후 만들어졌고,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파사니사금(婆娑尼師今) 때 축성되었기 때문에 파사성이라고 한다. 산성에서 북쪽으로 이포(梨浦)나루가 있어 남한강의 수로 이용에 중요한 지역이었다. 강변의 교통로는 충주에서 시작하여 여주, 양평, 서울로 이어진다. 파사성은 지정학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동안 북한산성, 남한산성, 행주산성, 청주 상당산성, 대구 칠곡 가산산성 등 산성들을 탐방해보니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산에 만든 중요한 군사시설이다. 이어서 조선 고종 황제의 부인 명성황후 민씨 생가를 방문했다. 이곳은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으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다 일본인에 의해 시해당하여 일생을 마쳤던 그녀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고종이 즉위하기 전 조선은 왕비의 친척들 세상이었다. 정조 사후(死後) 순조, 헌종, 철종은 안동김씨, 풍양조씨 등 세도정치에 나라가 어지러웠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한국산업기술대학 서영희 교수의 ‘대한제국의 재평가’ 에 대한 연수를 받았는데, 대한제국은 1897~1910년까지 13년간이며 광무정권(고종의 칭호)이다. 고종이 황제가 되고 고종비가 황후가 된 것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1901년 벨기에, 1902년 덴마크와 수교하고 유럽 상주공관을 운영하며 서양 11개국과 수교를 했다. 한편 1899년 한청 수호조약을 통하여 청나라 속국에서 황제국으로 바뀌었다. 1905년 일본과 을사늑약이 체결 되고 한국주재 외교 사절이 철수를 하고 고종은 일본 몰래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본에 미움을 사서 아들 순종에게 왕위를 물러주었다. 일제 강점기후 세계 193개국 750만 동포들은 조국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국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내주고, 조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평화의 길을 함께 걸어주었다. 5년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으로 유명한 세계적 석학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글에서, 한국인들은 잘 하려고 고민하고 겸손한 마음 자세를 가졌다고 했다. 이 같은 정신이 한국을 6.25 전쟁 잿더미에서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킨 힘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의 교육열과 배움에 대한 의지, 개선에 대한 열정 등을 높이 평가했다. 여주 파사산성과 명성황후 생가 방문 후 곤지암 리조트에 숙박하며 생각을 해보았다. 여행을 통하여 선조들이 살았던 삼국시대, 고종이 황제를 하던 대한제국들을 조명해 보았다. 여행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만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움에 도전하는 계기가 된다. 곤지암 화담숲을 걸으며 생각해보니 하늘이 아름다운 건 구름이 있기 때문이고 밤이 빛나는 것은 달과 별빛 때문이다. 인생이란 흘러가야 할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즐긴다는 생각을 놓지 말자.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건 나 자신이라고 한다. 여행이든 삶이든 자신이 파도를 헤쳐나가야 한다. 신중년을 보내며 우리 모두 열정을 갖고 도전하며 살자. P.S.보원고는 3,400자인데 지면 관계상 1,700자로 생략하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