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락치
이영규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권총진이 학원 프락치인 기관원이라 했다. 입학식을 하기 전에 있었던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나서 그 누구보다도 친밀하게 지냈다. 무척이나 좋은 형이어서 의지하고 따랐다. 지방에서 갓 올라와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투른 이영규의 서울 생활에 큰 힘이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공부에 열중하지 않아서 병역을 마치고도 삼 년씩이나 더 도전해서 가까스로 입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도 학생처럼 보이기보다는 교직원처럼 보이는 그런 모습이고 행동이어서 선배들은 물론 젊은 교수조차도 조심스럽게 대할 정도였다.
그는 겉모습과는 달리 동료나 선배들과 어울리려 애를 썼다. 여러 과외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열성으로 참여해보기만 기대와 달리 융화되지 못하고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다. 애써 감추려 해보지만, 늦깎이의 모습이 은연중 드러나서 그런다며 늘 불만스러워했다. 하지만 이영규는 달랐다.
동료들은 물론이고 선배들로부터도 인기가 많았다. 얼굴 낯빛이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귀공자처럼 귀티 나는 모습이어서 눈길을 끌었고 예의 바른 그의 태도가 어우러져서 인기가 많았다.
권총진은 이영규의 조그만 자취방에 눌러살다시피 했다. 인기가 많은 것이 부럽다며 이영규의 주변을 살피기 일쑤여서 여자 친구 문제 같은 사생활까지도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영규가 좋아서 열심히 활동하는 연구 동아리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선배들이 했다는 말 한마디마저도 빠뜨리지 않고 전해 들으려 애를 썼으며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며 다그치기까지 했다.
지나친 관심에 이상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별난 성격이라 여겨 지나치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런저런 말을 전하고 동아리의 활동 모습을 권총진에게 전해 옮긴 이영규였다.
그것이 화근인 것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던 심재국 선배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구속되었다 한다. 권총진의 정체가 드러났으며 심재국의 구속이 그의 작품이라 했다.
이영규는 몇 날 며칠을 가책으로 신음했다. 자신의 우매함에 화가 났고 구속된 선배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너무나 황당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권총진의 가증스러운 행동에 치가 떨렸다.
뱃속에서 천 불이 일어나서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다. 억울한 마음에 잠도 오지 않았으며 어쩌다 잠이 들어도 총진의 무서운 표정이 덤비고 물어뜯는 터라, 금세 잠에서 깨어나 웅크려 앉아서 불안에 떨며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심재국 선배가 체포되어 구속된 이유를 자세하게는 모른다. 들리는 바로는 동아리 모임에서 했던 말이 문제가 되어 그리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별 문젯거리가 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심재국 선배는 집권 연장을 노리고 헌법을 바꾼 독재정권에 대해 싫어하고 저항했다. 그렇지만 더 심하고 악랄한 북한의 독재정권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할 여지는 없다.
무서워서 뒤로 물러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물론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금세, 권총진의 큰 손아귀가 뒷덜미를 낚아채는 것 같아서 오금이 저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온전한 정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조차도 어려워질 것 같았다. 기운을 내야 한다. 힘이 세다는 이유로 그에게 지레 굴복하여 바짝 웅크리는 자신이 부끄럽다.
겨우 정신을 차려서 가증스러운 총진을 만나려 자주 들락거리던 다방에 왔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들기라도 해야만, 기운이 차려질 것 같아서 용기를 냈다. 권총진은 눈치를 살펴 가며 뒷사람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급한 성격의 영규지만, 그는 꾹꾹 눌러 참고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십여 분이 지났다. 권총진의 뒷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 머리를 맞대 얘기하던 두 사람이 일어서자 권총진도 후다닥 일어서서 따라나섰다. 권총진은 두 사람에게 시선과 정신이 팔려 딸려가고 있었다.
“형 오랜만이네.”
반가운 척 권총진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래도 대꾸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두 사람 행동에 시선을 두고 뒤쫓는 터라,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이영규를 피해 앞으로 나가려 하자 그는 옷소매를 낚아채며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형 사람도 몰라보고. 뭐 하는 거야?”
뒤쫓던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다방을 빠져나갔다. 아마도 감시하는 권총진을 알아차리고 하는 행동 같다. 바람처럼 사라졌다. 영규를 뿌리치고 따라나서 보려 해보지만, 권총진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응 영규구나. 난 누구라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따져 묻고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가증스러운 표정이 눈에 들어오자 부아가 더 치밀어 오른다. 힘껏 따귀를 갈겨 주고 싶지만, 화풀이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요즘 왜 보기 힘들어?”
“일이 생겨서 어디 좀 다녀왔지.”
“학교에는 왜 안 나오는데?”
“휴학할까 생각 중이야.”
“군대 가려고?”
영규는 병역을 마쳤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 이영규의 생뚱맞은 질문에 권총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또 가라고? 공부하기 싫어서……. 그냥 해본 말이야.”
“형! 요즘 이상하다. 남들 다하는 고민도 없이 항상 씩씩하던 형이 뭐가 그리 답답해서 또 군대에 갈 생각까지 할까? 뭔 일인지 얘기해봐. 내가 들어 줄 테니까 하하하.”
권총진은 말을 걸고 시켜보지만 건성으로 듣고 대답하고 있었다. 다방 안을 샅샅이 훑고 살피느라 움직이는 눈동자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좀 전에 놓친 두 사람의 흔적을 찾느라 그러는 것 같아서 아무 말이나 붙여서 시간을 끈다. 좀 전에 달아난 두 사람이 위험해질 수가 있어서다.
“재국 선배, 구속된 거 알아?”
권총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먹잇감을 두고 번득거리는 사냥개의 눈빛으로 변했다.
“몰라. 무슨 말이야?”
“형도 몰랐어?”
가증스러웠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것까지 이미 알고 있을 권총진이었다. 헌데도 처음 듣는 얘기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으로는 몇 번씩이나 가증스러운 얼굴을 주먹과 발로 짓이겼다. 눈앞에 권총진을 두고 분노를 누르느라 꽉 깨문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새 나왔다. 엄연한 현실이 이영규의 폭발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기 선배하고 삼현 선배도 안 보이던데. 그 선배들도 문제 있나?”
권총진의 속셈이 보였다. 행방을 감추어 버린 두 사람이다. 그는 두 사람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이때다 싶은 이영규는
“꽃밭 주점에서 봤는데……. 아마 지금, 거기 있을걸요.” 라 한 마디 던졌다.
순간 권총진은 순식간에 눈빛이 변했다. 먹잇감을 발견한 독수리처럼 날카롭고 독기 서린 눈빛을 드러내며 바빠졌다. 다방 입구에 설치된 공중전화기로 전화통화를 하고 돌아와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김수곤 선배가 합격했다더라.”
“우리 서클 선배를, 형이 어떻게 알아요?”
친하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함께 활동하는 동아리 선배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고학을 한다고 했다.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인 편이 아니어서 교류가 많지 않지만, 수재들이 모였다는 법과대학에서도 수재로 소문난 사람이라서 관심이 많다. 반면 권총진은 그를 알지 못한다.
김수곤의 합격 소식을 어떻게 알까. 서로 마주치거나 교류가 생길만한 처지가 아닌 두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근황을 알고 뜬금없이 꺼내는 말이라서 영규는 일단 시치미를 떼고 봤다.
“그 선배 유명하잖아. 그래서 알지.”
두 선배의 소재를 거짓으로 알려 준 것은 떠도는 소문을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꽃밭 주점으로 달려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 그러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디론가 전화 통화를 하고 돌아오고 나서부터 느긋해진 권총진을 보면 뭔가 조치가 취해졌음이었다.
전화를 걸려고 자리를 비웠을 때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그곳으로 달려갔어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어 시간을 끌어 본다.
“약속을 깜박했네. 다음에 봐. 형!”
음악 다방에서는 꽃밭 주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큰 빌딩 이층 전체에 자리 잡고 있어서 실내가 무척이나 넓다. 다방은 출입계단이 특이했다. 주 출입 계단실의 상부를 둥그렇게 꾸며 놓아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동굴 같은 느낌이 들고 이런저런 장식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제법 운치가 있다.
유명한 디제이들이 교대로 출연하는 음악다방이라서 늘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런 것을 감안 했는지는 몰라도 출입 계단실을 잘 꾸며 놓았다. 자리를 미처 차지하지 못한 손님들이 넓은 계단에 앉아서 사람을 기다리기도 하고 다방 안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빨간 공중전화부스다. 다섯 대나 설치되어 있지만,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오백 평이 넘는 넓은 다방 안은 어두컴컴한 편이라서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뜸 사람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 봐야 할 정도다. 게다가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시끄러운 음악과 사람들이 내는 소음들이 합쳐지면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곳이라서 젊은이들이나 드나드는 곳이다.
김순두 교수는 미국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그가 창가에 바짝 붙어 앉아서 창밖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점잖기로 소문난 김순두 교수가 북새통인 다방에 앉아 있다니 의아했다. 앞자리에 건장한 청년들을 앉혀놓고서, 옹색한 자세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에 팽팽한 긴장이 돈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심상찮은 분위기였다.
평소에 김순두 교수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특히 독재정권에 비판적이어서 말이 통하는 교수였다. 연구실에 드나들며 잔심부름도 했고 허드렛일을 거들어 돕기를 자처하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겪을수록 양심이 바로 선 스승이라 느껴져서 믿고 따르며 존경했다.
지난 학기에 갑작스럽게 떠났던 터라, 교환교수로 갔다는 미국의 대학에 여러 번이나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무척이나 궁금했던 참이다.
짐작이 잘못되었으면 좋겠다. 권총진에게 가격당한 뒤통수가 산산조각이 나서 아직도 꿰매어지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어 나타나서 뱀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믿었건만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다. 제발 존경하는 김 교수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학문의 자유 같은 그럴듯한 이유가 아니어도 좋다. 믿고 따르며 닮고 싶어 하는 제자들이 있지 않은가. 썩어버린 독재 권력의 편에 서는 것만 해도 비겁한 일이 아닌가.
권총진이 어느새 뒤따라 다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김순두 교수 옆자리에 자리를 잡더니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창밖을 내려다본다. 심장이 떨리고 오금이 저려온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벌떡 일어났다가 맥 풀린 모습이 되어 주저앉는다.
분풀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수수방관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저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영규는 자리를 옮겨 앉아서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파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