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세계
여러 번이나 전화를 해왔지만 피할 수밖에 없었다. 속마음이야 무엇이든지 친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박준영은 어릴 때부터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었지만, 상대조차 해주지 않아서 김수곤을 대할 때마다 열등감이 느껴졌던 터라 삼촌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겨보고 싶었다.
“수곤이에게는 왜 그러세요?”
김수곤은 집무실에서 스치듯 만난 이후로 안달이 나 있었다. 그의 부탁을 받고 여러 번이나 얘기를 했지만 끝내 만나 주지 않은 박영달이다. 어제도 그의 전화를 피하고 말았지만, 삼촌의 생각이 궁금했다.
“…….”
조카가 의문을 품어서 물어보지만 딴청이었다. 그딴 것을 꼭 물어봐야 하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티브이로 시선을 돌려서 놀리듯이 싱글거렸다.
“기옥이 아들 말하는 거냐?”
좀 전부터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을 두어 듣고 있던 박준영의 아버지가 끼어들며 묻는 말이라서 박영달을 마지못해 대답했다.
“한번 만나 주었는데”
“갸가 자네를 왜 만나려 하지?”
“요번에 사법고시에 합격을 했대나 봐요. 그래서 아마.”
“그래! 갸가 사법고시에 합격했어?”
아버지가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느라, 박준영이 옛날 일을 끄집어냈다.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걔 때문에 난리 났던 일?”
초등학교 시절에 생긴 일이라서 십 년이 넘게 지난 일이었다. 그런데도 박준영의 아버지는 그때의 김수곤을 금세 기억해냈다.
“야! 그놈 정말 똑똑하더라고……. 제네 학교 교장하고 담임이 그 주먹만 한 애한테 경을 쳤어요. 경을!”
텔레비전에 시선을 묶어둔 박영달이지만 형님이 자신더러 들으라는 얘기라서 마지못해서 하는 말이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형님”
“있고말고. 저놈 때문이지. 저놈이, 우등상을 받았는데. 사실은 그놈이 받았어야 했거든. 자네 공 갚는다며, 교장이 담임에게 지시해서 준영이가 받았어. 하하하”
그때의 기억을 또렷이 기억해내며 말을 이었다. 김수곤에게 감탄했음을 웃음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놈이 그랬다고 학생들을 선동해서 일테면, 데모한 거야. 지 애비는, 못나빠져서 사람 취급도 못 받았지 그 애는 똑똑하니까 애들 사이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았던 거지. 그 애가 애들을 동원해서 선동하니까 저보다도 형들인 오 육학년들까지도 들고 일어나서 난리가 났었지. 하하하”
데모라는 말에 박영달이 반사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아마 직무의 본능이 발동하는지 시선을 돌리고 눈빛을 반짝거리며 날을 세웠다.
“그래서요?”
“더 놀라운 것은 우등상을 받으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는 거야.”
“?”
“막대기 꽂을 땅조차 없는데……. 월사금을 어떻게 내겠어? 준영이가 받은 우등상장하고 걔가 낼 월사금하고 바꾸려고 그 짓을 꾸몄다는 거야. 목적을 따로 두고 애들을 이용했어요. 하하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정 교장 뒤 봐준다는 것까지 알고서 따지더래. 그래서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글쎄”
“설마, 어린애가 그럴 리가 있겠어요?”
권부 핵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서 겪어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다. 온갖 이권을 놓고, 생명을 걸어서 싸우는 곳이니만큼 별별 사람들이 꾸미는 기상천외한 수법들을 수없이 보고 겪었다. 박영달은 그것을 목격하고 조사하며 다루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초등학교 삼학년인 어린애가 데모를 주동해서 이용했다니, 온전히 믿을 수가 있는가. 한데, 그것도 부족해서 뒤를 봐준 사실을 알고 교장을 협박했다니 말이 되는가.
막중한 일을 처리하기에 여러모로 애로가 많을 것 같은 삼촌이었다. 삼촌은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 전까지 내세울 만한 학력이나 경력도 없으며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자리가 만든 능력으로 버티는 삼촌이라서, 똑똑하고 유능한 김수곤을 데려다 쓴다면 되레 삼촌에게 득이 되는 일이다. 지난여름에도 고향 동네에 사는 선배를 데려갔다. 삼류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능력도 그저 그런 사람이라 들었다. 그에 비하면 김수곤은 삼촌에게 꼭 필요한 인재다.
“무슨 문제 있어요?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애한테까지 돌아갈 자리가 어디 있어? 걔 아버지도 그렇고”
“걔 사법고시 합격했잖아요. 판사나 검사는 할 수 있을 것 아니 예요?”
“걔가 그것을 몰라서 나를 찾아오겠냐? 판검사가 별것이냐. 보통 사람이 생각할 때는 대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똑똑한 놈이라서 그걸 잘 알아서 그러는 거야.”
모두가 선망해서 되고 싶어 하는 판검사를 별것 아니라 하며 김수곤의 아버지를 갖다 붙여 얘기했다.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걔 아버지하고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허허허, 허허허.”
박영달이 헛웃음을 한참이나 웃었다. 박준영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선문답 같은 대답을 했다.
“세자가 어린 나이에 장가가는 이유 알아?”
“예?”
삼촌의 뜬금없는 질문이라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말이겠지만 박준영은 이해가 되지 않아 박영달을 어리벙벙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가 씩 웃고 만다.
“하하하.”
“세손 때문 아닌가요?”
“나무만 보면 안 돼. 숲도 보고 산세도 볼 줄 알아야 한다.”
“?”
“공부 좀 해라. 헛고생이 더 많은 세상이야.”
아직도 어린애나 다름없는 박준영이라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를 못하지만 상관없다는 투였다.
“이 사람아! 아직 어린애잖아. 나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쟤가 알아듣겠어?”
두 사람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박준영 아버지였다. 그도 언뜻 알아듣기가 쉽지 않은 터라서 박준영을 핑계 삼아 끼어들어 건네는 말이었다.
“김수곤인가 하는 걔는 이미 터득하고 바쁘잖아요.”
“……그래도 그놈은 워낙 똑똑한 놈이 아닌가?”
“똑똑하면 뭐 해요. 한계가 있는데. 보통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야망이 큰 놈이라 만족하지 못해서 저러는 겁니다.”
“똑똑한 놈이니까 자네가 키우면 나중에 힘이 되지 않겠어?”
“걔는 호랑이 새낍니다. 형님”
청맹과니가 되어서 청탁을 하는 것처럼 들리자 단호하게 거절하고 박준영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잇고 있었다.
“준영이 너 공부 많이 해야 해. 사람 볼 줄을 알아야지. 그걸 모르면 어렵게 살기 십상이다. 알아들었어!”
김수곤의 합격 소식이 무척 부러웠다. 출세가 보장된 것이라 판단되어서 부러운 것이 없고 아쉬운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그랬다. 그런데 삼촌의 말을 들어보니 김수곤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었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 둘러앉아 뉴스를 보던 정병기의 아버지가 외출에서 돌아온 아들을 불러 소파에 앉혔다. 정병기 아버지는 공부만 잘하는 아들이라 불만이 많았다. 그를 온실 속의 화초라 여기고 있었다. 나약할 뿐 아니라 물색없이 행동하는 아들이라 생각해서 그렇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한 번쯤 물어왔어야 했다. 마냥 세월만 보내고 있어 불만이었다. 벌써 한 달째였다.
“너 어디 다녀오느냐?”
“친구 만나고 오는 중이에요.”
“어떻게 할 건지 결정했어?”
“아직 생각 중인데요.”
“연수원에는 들어갈 거냐?”
“그것도 아직…….”
자신의 짐작이 맞아 들어가자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아직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을 안 했으면서……. 여태껏 뭐하고 돌아다니는 것이야!”
“…….”
“너도 알다시피 네 동기만 해도 몇 명이냐? 생각해봐!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된 것이야. 그깟 시험에 합격한 것 가지고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해낸 것처럼……. 쯧쯧쯧.”
정병기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아버지는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정병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해서, 겨우 해방감을 맛보는 중인데 그것을 탓하는 아버지라서 반항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서 반항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