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쥔 모래인 것을
이성수
이영규의 소설연재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말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흥분했다. 그런데도 권총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실명 소설연재에 반응을 보이자 연일 언론이 떠들어댔다.
“고소했어! 하하하”
아직도 시퍼런 칼날을 가지고 있어서 무모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영규와 문화부장은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고 맨 주먹질이라도 해볼 힘이 생겼다지만 권총진의 권력에 비하면 하찮았다.
“선배님. 실명으로 바꿔서 저런 거죠?”
“그런 것 같지만 다른 내막이 있는 것 같아.”
문화부장은 여론이 악화되어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으로 번져가자 고육지책으로 내놓는 반응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내막이 있든지 없든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 아닌가요? 하하하”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여러 사람으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서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증거를 댈 수가 있다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소설을 빙자하여 실명으로 폭로했다.
“저렇게 신사가 되어서 나오니 얼마나 좋은가?”
“그럼 우리도 신사가 되어야지요. 하하하”
“무고로 맞고소 해”
“결코, 신사가 아닌데 낌새가 이상합니다. 하하하”
“자네는 법대라서 주변에 많지?”
변호사를 선임해서 싸워야 하는 형편이었다. 십중팔구는 법이라는 형식을 빌려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계략과 음모가 도사린 권총진의 대응일 것이다. 그러므로 싸워 이길 승산은 적지만 제대로 된 싸움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정병기 변호사가 돕기로 했어요.”
“........?”
“정병기 선배 모르세요?”
“........?”
정병기는 연수원 성적이 좋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가 가진 배경을 가지고도 충분했다. 금상첨화였다. 그 결과 요직 중의 요직으로 발령을 받아 출세의 가도가 활짝 열렸었다. 그래도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인권 보호를 위한 그의 활약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럼 눈치는 보지 않겠네. 좋았어! 제대로 붙어보자! 하하하”
아무리 큰 힘으로 눌러서 압박을 가한다 해도 양심이나 신념은 어쩌지 못한다. 큰 힘에 취한 자들은 그런 것까지도 자신들의 것이라 여기며 주무르려 들지만, 한계가 있다. 물론 양심이나 신념을 팔아 자신의 이해를 취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었다.
“잘 만하면 이길 수도 있겠는데.”
“선배님. 뭐라 하셨어요? 이길 수도 있다고!”
정병기가 하는 말이라서 깜짝 놀랐다. 허투루 얘기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조사해 보니까 증거가 많아. 아직 장담할 수는 없지만, 증인도 세울 수 있을 것 같아.”
“정말입니까?”
“충분히 해 볼만 해”
증거를 찾았다니 놀랄 일이다. 증인과 접촉되어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니 대단한 능력이고 열정이었다. 시도를 해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같이 손사래를 쳐서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워 포기했던 일이다. 소설을 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
“수임료도 못 드렸는데……”
“나는 돈 많아. 미안할 것 없어요. 하하하”
“…….”
“너도나도 돈돈하면 돈이 귀해져서 돈이 사람을 먹어치우게 돼. 하하하”
수임료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실비만이라도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미루고 있었다. 초창기 신문사라서 부족한 것들이 많아 어떻게 해볼 만한 여지가 생기지 않아 염치가 없었다.
“증인은 아는 사람인가요?”
“수곤이가 나서주면 좋겠는데 그럴 의사가 전혀 없을 거야.”
김수곤은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던 선배였다. 그토록 열망하는 출세가 보장된 법조인의 길을 팽개치고 공장에 틀어박혀서 많은 사람을 돕는다고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의 행동이 아니어서 놀랍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 선배도 당했나요? 그런 말 못 듣지 못했는데.”
“아무튼, 명예 회복할 기횐데 아쉽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정병기라서 더 캐묻지 못하는 이영규였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기는 하다. 권총진의 덫에 걸린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도 갔으며 강제로 징집되어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수곤만은 그러지 않았다.
“구속영장 떨어졌어. 하하하”
권총진을 수사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대단한 권력을 틀어 쥐었다. 그런 그가 구속되다니 환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 온 문화부장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뒤집기 한판이네요. 하하하”
“정 변호사 대단해! 하하하”
“하하하”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내린 결단 같다. 자칫하다가는 불똥이 핵심으로 튈 조짐을 보이자 제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내린 조치가 분명했다. 처음에는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리고 여러 곳에 손을 써 놓은 정황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젠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어 권총진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애처롭기까지 하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쉼 없이 터졌다. 너도나도 마이크를 들이대서 질문을 퍼붓지만 묵묵부답이었다. 50명도 넘는 기자들에게 포위되었다. 이리저리 휩쓸리며 고개를 푹 수그리고 양팔이 붙잡혀 쫓기듯이 걷는다. 겁먹은 표정이고 눈동자의 초점도 잃었다.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이지만 무시무시하게 느꼈던 카리스마는 어디에도 없다. 손과 발, 심지어 머릿속까지 꿰뚫어 보던 권총진이 아니던가.
“휴!”
김수곤은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끌려가는 모습을 보니 하찮기 짝이 없는 권총진이다. 꿈을 빼앗기고 영혼도 빼앗겼다. 야망도 빼앗겨서 주인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냥개가 되었다. 애먼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고 물어뜯기도 했다.
“시원하지 않아?”
정병기의 질문에 말끝을 흐리고 만다. 왜 찾아왔는지 모를 리가 없지만, 딴청부터 피워본다.
“그래야 하냐? 하하하”
“다 알고 왔어. 좀 도와줘.”
“뭘?”
“나와 줘.”
“내가 해야 할 말이 뭔데?”
“겪었던 사실이면 충분해.”
“내가…… 기름 냄새 풍기는 공원들과 어울리며 지저분한 공장바닥을 뒹구는 이유를 모르지 않을 텐데. 나더러 죽으라는 얘기지.”
“언젠가는 알려지게 되어있어. 차라리 이번에 터는 것이 좋아. 네 능력이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이미 갈 길이 정해진 사람이야!”
김수곤은 양심을 팔고 사랑도 팔았다. 민경혜의 얼굴이 떠올랐다. 끝까지 결혼을 반대한 까닭을 듣고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다가 남산 같은 배를 움켜쥐고 병원으로 향했다. 민경혜의 슬픈 표정과 윤승희의 행복한 얼굴이 동시에 나타나 번갈아 가며 김수곤의 차가운 심장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