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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칼럼) 지필문학 4월호 통권57호(발행인 박세영)/류시호 논설위원

두물머리 강가에 가서 혼탁한 마음도 씻고 새로움에 도전하며 살자.
두물머리 세미원과 마현마을 정약용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연꽃이 피는 계절 세미원(洗美苑)에 갔다. 세미원은 가끔 가는데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였다. 이곳은 한강을 맑게, 아름답게, 풍요롭게하려는 발상에서 시작하였고, 그래서 수생식물을 활용해서 한강을 맑고 아름답게 보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세미원이 있는 두물머리에서 조금 내려가면 수도권 23백만 명의 식수를 제공하는 팔당댐도 있다.

연꽃은 불교가 이 땅에 정착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의 불상 좌대나 불교행사에 연꽃문양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일상생활 속에 화려하게 함께했다. 세미원에는 각종 연꽃을 비롯해 수생·초본·목본식물 270여 종이 있다.

특히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유배생활 중에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를 정원으로 꾸민 세한정이 있다. 조선의 문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인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은 세한도를 세미원의 별도 공간에 정원을 만들었다. 건물 입구에 추사를 흠모하는 고고한 노송(老松) 한그루가 더욱 빛나 보인다.

연꽃 정원을 관람 후, 배를 여러 척 이은 열수주교(烈水舟橋)를 건너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갔다. 이곳은 T.V와 영화, 언론 등에 자주 나오는 느티나무 아래에 촬영 명소가 있다. 이름도 아름다운 두물머리 강가에 서면 잔잔한 강물이 젊은 연인들을 유혹하고 아름다운 추억 쌓기에 좋다.

이어서 두물머리에서 20여 분 거리의 다산 정약용 생가가 있는 마현마을에 갔다. 조선 후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두 번에 걸친 오랜 전쟁으로 많은 땅이 황폐해지었고, 식량 생산이 줄어들어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7세기 이후 조선의 지식인들은 외부의 새로운 사상과 기술 문명을 접했고 개혁이념이 강했다. 개혁론자들은 농업중심의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과 상공업 중심의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으로 나누어 실학을 전개했다. 다산은 과학적 이론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농업기술, 방직기술, 군사 기술 및 의료기술 등에 실학을 통하여 르네상스를 꿈꾸었다.

이른 새벽 물안개가 필 때, 연인이나 부부가 마현마을이나 두물머리에서 물안개를 보며 산책을 하고 차 한잔하면 추억 쌓기에 좋아 필자도 가끔 간다. 마현마을과 두물머리는 시인에게는 시심(詩心)이 발동하고 화가나 수필가, 소설가들은 글감과 스토리를 얻을 수 있기에 방문을 적극 추천한다.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과 추사 김정희를 기리는 세한도를 정원으로 꾸민 세한정 그리고 실학을 실천한 다산 정약용 개혁가의 마현마을을 생각하면서, 인문학의 즐거움을 생각해보았다. 백성이 잘사는 나라로 이끌고 가고 싶은 다산의 위대한 꿈이나, 아름다운 연꽃들이 있는 세미원, 추사의 세한도 등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용기를 준다.

높고 푸른 하늘,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모두 세미원과 마현마을을 방문하여 명상에 잠겨보자. 그리고 가슴이 답답할 때는 마현마을 강가에 나가 이른 아침 피어나는 물안개를 보면서, 정약용은 어떤 개혁의 꿈을 키웠을까도 생각해 보자. 우리 모두 가끔 마현마을이나 두물머리 강가에 가서 혼탁한 마음도 씻고 새로움에 도전하며 살자.

P.S. 이 원고는 2,700자인데 지면 관계상 1,700자로 올림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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