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화석정과 황희의 반구정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오랜만에 자유로를 따라 율곡 이이의 고향 임진강 율곡면 화석정을 갔다. 비무장지대 북쪽을 바라보며 깎아지른 봉우리에 세워진 정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강 건너 넓은 장단평야가 보이며 풍경이 좋다. 요즘 마을 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데, 조선왕조 선조 편에 율곡 이이가 나온다.
율곡이 관직에 있을 때는 여가가 날 때마다 화석정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 정자에서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교사 시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건국대 신병주 교수의 ‘조선왕조실록과 기록문화’ 강의를 듣다 보면 율곡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경기도 파주시 율곡면은 아버지 이원수의 본가다.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본가인 강릉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6세 때 본가가 있는 율곡으로 왔다.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3세부터 29세까지 9번의 과거에서 9번 장원급제를 하였다. 고려시대 정몽주가 3번 과거에 합격한 것과 비교가 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교육을 잘 받았고,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로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지냈다. 성리학의 대가인 그는 아쉽게도 49세에 별세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에 본인과 어머니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명문 가문이다. 화석정에서 바라본 북한 땅은 왠지 가슴이 찡하다.
문산의 임진강 강변에는 청백리의 사표 황희 정승이 만년에 갈매기와 벗하며 보낸 반구정이 있다. 조선왕조 초기 태종의 신하로 있다가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 문제와 관련해서 유배를 갔다. 그 후 다시 세종에게 천거되어 영의정으로 오랜 기간 근무했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한강 하구의 노을과 철새들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파주시에는 황희와 율곡 등 명 정승들의 고장이다.
그런데 자유로를 따라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곳 교하(交河)지역 패권을 두고, 1천6백 년 전 고구려와 백제의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그곳이 오두산성(관미성터)으로 지금은 통일을 위한 가교역할을 하는 곳이다. 강 건너 북한지역의 김일성 사적관, 인민문화회관, 북한군 초소를 눈으로 볼 수 있다.
백제의 유적지에서 느끼는 분단의 현실, 임진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지역, 한강 하구 자유로에 있고 뛰어난 자연경관 때문에 자주 가고 싶은 곳이다.
오두산성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북쪽으로 개성시 송악산이 보이고, 북한 주민들이 농사짓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본 북한지역은 제일 짧은 임진강의 강폭이 390여 미터로, 이보다 더 가까이 북한 군인과 대치하는 비무장지대는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율곡의 화석정 근방에는 파평면 장파리가 있다. 40여 년 전 초등학교 교재에 나온 ‘장마루촌의 이발사’라는 실화가 담긴 동네이다. ‘장마루촌의 이발사’는 6.25 전쟁에 나간 대학생이 장마루 촌에 정착하며 이발사가 되었는데, 그 지역 초등학교 여교사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랑 바위를 사이에 두고 정을 나누었지만, 결혼하지 못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전쟁은 아픈 기억을 남기기도 한다.
식사하려고 인근에 있는 프로방스에 갔다. 20여 년 전 오픈한 이곳은 지금은 쇼핑과 먹거리 등 타운을 이루며 많은 사람이 온다. 특히 한류 열풍 덕분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들이 많이 온다기에 기분이 좋다. 일산에 살 때는 자주 왔고 여러 모임의 친구들을 안내했다.
수도권에서 가장 가깝게 북한지역과 대치하여 안보 교육에도 좋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이라 풍경도 좋다. 그리고 길이 넓은 자유로 덕분에 많은 사람이 나들이를 하러 간다.
모두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가끔 자유로를 달리며 삶의 의미를 느껴보자. 가슴이 답답할 때 강변북로를 따라 행주대교가 있는 자유로를 달리며 스트레스도 해소도 하고 선조들의 흔적 역사도 배우자. / 논설위원 류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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