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윤 작가노트.. 나는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지만,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Still Life/정물’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내 작품관은 평소 우리가 중요히 여기지 않는 사소한 정물이 삶에 풍요와 여유를 일으키는 주된 요소라 여기는 나의 확고한 사상에 기반한다.
17세기부터 미술사에 등장한 정물화(still-life)는 일상 사물에 작가의 의도를 투영하여 전달하는 장르이다.
이 같은 정물화의 발달은 특권을 가진 지배 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당시 기존의 예술과는 차별적인 내러티브를 내포하며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20세기 전위 예술, 추상 예술, 상업 미술의 발달과 더불어 이전 독창적이었던 정물화의 특성은 점차 시각적인 자극만을 강조하는 대중예술의 성향을 강하게 띄게 되며 진부한 장르로 여겨졌다.
나는 현대인의 ‘욕구 충족’만을 위해 생산-소비-낭비되는 과정을 겪은 후 ‘버려진 꽃과 과일’을 주소재로, 나만의 독창적인 예술 기법(painting-photo-painting)을 활용하여 새로운 형식의 ‘정물화’를 창조한다.
내 작품은 현재 지루한 장르로 전락한 정물화의 장르적 특성과 이미지를 ‘차용’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 한 ‘현대판 정물화’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개인/집단’과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나만의 통찰을 전달하고자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창조된 새로운 형태의 정물화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생을 마감한 꽃과 과일이 다시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나는 (revival) 과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이를 통해 꽃과 과일들의 삶의 기억을 다시 환기한다.
새로운 형태로 ‘부활한 꽃과 과일(작품)’은 관객들이 삶의 유한 구조를 깨고 무한의 순환 (infinity)을 인식할 기회를 제공하는 매개체이다.
일상 속에서 축하와 감사의 의미로 사용되는 꽃과 과일이 특정 순간만을 위해 일회용으로 사용된 후 버려지는 무정한 광경에서 삶을 다해가는 꽃과 과일들에 대한 나의 애정이 꽃피어난다.
나는 향기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죽어가는 꽃과 과일을 수집하여 나만의 선과 색으로 채워진 캔버스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로 탄생한 이미지를 캔버스에 출력한 후, 그 위에 다시 ‘붓-터치(brush stroke)’를 주며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출력된 이미지 (캔버스) 위의 붓-터치는 내가 버려진 이들에게 주는 ‘만지다, 접촉하다, 감동시키다 (touch)’와 그들에게 주는 ‘위로’를 의미한다.
또한 붓-터치를 사진 위에 얹는 행위를 통해 ‘사진 (photo)’과 ‘페인팅 (painting)’의 경계를 흐린다. 나는 작품을 통해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존재’를 회화를 연상시키는 '정물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한시적인 존재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여 다시 한번 새로운 ‘생(生)'을 선사한다.
나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시들고 병든 모습이다. 우리의 인생도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상처와 문제를 안고 있듯이 나는 꽃과 과일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나는 부족하고 상처 입은 개개인이 하나가 되어 사회를 이루고,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음에 주목하며, ‘우리 사회는 불완전한 존재들의 집합’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시들고 버려진 꽃과 과일’들이 모여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된 것처럼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고 의지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나의 소망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내 작품에서 페인팅 배경은 배경막(backdrop)과 같은 기능을 한다. 배경막은 무대미술에서 배경이 되는 회화/사진을 일컫는 용어로 배경을 천에 그려서 커튼 모양으로 내려지는 것을 말하며 ‘back colth’로 불리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무대의)배경(막), (주위)배경, 그리고 (사건의)배경을 의미하기도 하며 앞에 놓여진 주체를 장식해주는 것으로 사용된다.
내 작품에서 쓰이는 페인팅 배경 또한 이러한 배경막(backdrop)의 역할로 활용되며 작품 속 주체인 꽃과 과일을 꾸며주는 뒷 배경 역할을 한다.
증명사진에 쓰이는 배경막(backdrop)은 인물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색, 무늬, 모양에 따라 어떠한 경우에는 인물의 정체성을 삭제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배경막(backdrop)의 특성에 매료되어 내 작품의 페인팅 배경을 배경막(backdrop)과 같은 역할로 작품 속에서 등장시킨다.
나는 시리즈에서 버려진 것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며,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주목했지만 작품관이 확장됨과 동시에 페인팅 배경 또한 확대됐다.
페인팅 배경의 확장은 앞서 이야기한 배경막(backdrop)의 역할과 큰 연관성을 띈다. 에서 배경(background, backdrop)은 이와 대비되는 전경(foreground)을 더욱 눈에 띄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였다면, 이후 페인팅 배경의 확대는 더 많은 시각적 요소들을 전달하는 계기가 된다.
꽃과 과일에 큰 비중을 두었던 전 시리즈와 달리 현재 내 작품에선 꽃, 과일, 그리고 페인팅 배경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다. ‘작품 크기의 확장’은 곧 작가의 ‘시야 확장’을 말하며 더 많은 알레고리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를 더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배경의 확대로 인해 전경(foreground)에 배치된 꽃과 과일의 정체성을 제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배경막의 확대로 인해 인간의 ‘삶과 죽음’, ‘불완전한 개개인의 조화’에 대해 이야기하던 내 작품은 ‘현대 사회의 개인/집단 정체성’에 대해 논하는 계기가 된다.
확대된 페인팅 배경은 버려진 꽃과 과일들이 머물렀던 장소/고향, 가고 싶었던 꿈의 장소 등을 추상적으로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하여 표현한다.
그들이 살아생전 그리워하거나 가고 싶었던 장소에 그들을 간접적으로 데려감으로써 그들의 꿈을 이루어 주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