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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범 개인전..'빛과 색의 향연'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관장 허성미)에서 김가범 작가의 개인전이 4월 29(수) ~ 5월 5일(화) 까지 열린다. 김가범 작가는 서울 금호미술관 외 베를린, 도쿄, 뉴욕 등 개인전 20 여 회 개인전을 열어 오며, 추상화를 실험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2020년 신작을 선보이며 작가의 새로운 도약을 전시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대상에서 얻은 감흥을 나이프를 사용해서 그리는 김가범 작가의 근작은 산이 모티브이다. 작업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우면산을 관찰한 결과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산은 김가범에게 있어서 아주 오래된 미적 대화의 대상이자 작업의 근간이다. 그녀는 세잔이 오랫동안 생 빅토와르 산과 대화를 나눈 것처럼 눈앞에 전개된 우면산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작가의 그림은 생 빅토와르 산을 소재로 한 세잔의 그림들과는 달리 구상적이라기보다는 추상화에 더욱 가깝다. 150호 크기의 캔버스 두 개를 가로로 길게 잇대어 제작하고 있는 대작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산의 봉우리가 화면의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모양이 뚜렷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 가까이 다가가 세부를 살펴보면 화면 전체가 추상적인 행위의 흔적들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이프를 주로 사용하여 유성물감을 겹쳐 바른 흔적에서 관객은 작가가 오랜 시간동안 작품을 하면서 보냈을 시간과 반복적인 행위의 축적이 주는 미적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산은 무궁무진한 소재의 보고(寶庫)이다. 그것은 또한 피곤한 영혼을 쉬게 하는 정신적 안식처이기도 하며, 인간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원료의 산지이기도 하다. 산에서 벌목된 나무들이 송판으로 가공돼 가구의 재료가 되며, 그것은 인간에게 이롭게 쓰인다.

어디 그뿐인가? 수목이 우거진 산은 홍수를 방지해 자연재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며, 산짐승들과 다양한 곤충들이 서식,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며, 광물질을 제공하여 인간 생활을 이롭게 하지 않는가?”

-김가범, <작업노트> 중에서-

이렇듯 산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산이 단지 표피적인 소재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전체적인 틀 안에서 해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축제-산(Festival-M)> 연작은 ‘축제’라는 타이틀이 암시하듯, 화려한 원색들로 이루어진 시각적 축제이다.

그녀가 자신의 근작들에 ‘축제’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면에는 산이 지닌 이러한 성격,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변신의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즉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봄의 정취와 불타는 듯한 가을 단풍이 자아내는 황홀한 풍경이 바로 산이 벌이는 시각적 축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회화는 무엇보다 시각의 예술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회화예술의 형식에서 시각은 여타의 다른 감각보다 우선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작가의 화려한 산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시각이 강조된 회화예술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강조해야 할 것은 나이프의 사용에서 비롯된 촉각적 성질의 발현이다. 작가는 찐득하게 갠 유성물감을 나이프에 듬뿍 묻혀 캔버스 표면에 바른다.

이 나이프 기법은 시기에 따라 다양한 변천을 이루며 오늘에 이른다. 최근 5년 사이에 이루어진 나이프 기법의 다양한 변화는 작가가 붓보다는 나이프의 효과에 더욱 매료되었음을 말해주는 증좌이다.

2014년에 제작한 연작의 수평구도로 이루어진 화면에서 물에 비친 도시나 숲을 연상시키는 대상은 평면적인 단색조의 바탕에서 어렴풋이 떠오르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나이프에 의한 터치는 음악에서의 스타카토식으로 짧게 끊어진 채 불규칙하게 겹쳐져 화면에 단단히 밀착돼 있다.

이 ?은 터치들이 중첩돼 이루어내는 색채 조화의 세계는 붓과 나이프의 터치가 혼용된 연작에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가령 화면 전체가 ‘균질적(all-over)’인, 그래서 마치 쇠라나 시냑의 점묘파적 실험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을 낳기도 했다.

2016년에 가진 개인전 <진득한 즉흥, 숙고된 찰나>에서 작가는 현재 보는 것과 같은 과감한 나이프 터치의 근원이 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것은 작가의 대담한 성격을 잘 드러낸 작품들로써 매우 숙련된 나이프의 솜씨를 보여주었다. 작가는 나이프를 선호하는 자신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성격상 붓은 사용의 폭이 좁고 성에 안 차 나이프를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걸쭉하게 갠 유성물감을 나이프에 듬뿍 묻혀 캔버스 위를 누비듯이 발라나갈 때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붓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디테일 처리를 할 때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붓도 사용한다. 어느 측면에서는 남들이 나를 두고 남자처럼 호방하다고 하는데 그림도 그런 호방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김가범, <작업노트> 중에서-

2016년에 제작한 연작은 나이프를 주로 사용하여 붓질이 약간 가미된 평면적인 추상화이다. 이 연작은 한난대비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고, 푸른색 계통의 단색조도 있으며, 청색과 주황에 흰색을 곁들인 작품들도 있다. 즉 이 시기는 나이프의 효과를 둘러싸고 다양한 색채와 스크래치 기법의 실험이 왕성하게 이루어진 때이다.

지난 10여 년에 걸친 작가의 회화적 실험을 살펴볼 때 단색조에 의한 평면적인 화면 구축에서부터 원색의 화려한 보색대비에 이르기까지 색채와 기법을 둘러싼 실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연작은 다년간에 걸친 나이프의 사용으로 숙련된 내공이 화면을 더욱 볼만한 시각적 충돌의 장(場)으로 만들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보색에 의한 색채의 시각적 충돌이다.

그것을 가리켜 ‘부조화의 조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거친 듯 하면서도 질서가 있고 질서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시각적 혼란을 야기하는 김가범의 화면은 마치 살아서 꿈틀대는 유기물처럼 역동적인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역동성은 최근에 작가가 주력하는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회화적 속성이다. 그리고 그 살아서 꿈틀대는 듯한 역성성은 대체로 두꺼운 유성물감의 질감으로 온다. 나이프로 처 바른 찐득한 유성물감의 두꺼운 질감은 기법에 따라 다양한 미적 체험을 불러일으킨다.

포효하듯 일렁이는 파도를 연상시키는 푸른색과 검정, 그리고 흰색이 가미된 작품들은 지그재그 형태로 엇갈리게 친 나이프의 기법에 의존한다. 이와 병행하여 김가범은 색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데, 가령 청색에 약간의 백색이라든지, 검정에 약간의 백색과 청색, 그리고 빨강에 약간의 다홍과 노랑을 첨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이번에 발표하게 될 작품들에서 동양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작품을 제작할 때 의식한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그런 느낌이 도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생애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이력을 참고해 볼 때, 이러한 진술은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참조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동양과 서양을 자신의 몸과 오관을 통해 직접 체득한 만큼, 그러한 감각이 회화적 매체와 재료를 통해 육화되고 응축된 ‘삶의 대리물’ 즉 작품을 우리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김가범 작가의 개인전이 4월 29일부터 5월 5일 까지 열린다. 추상화를 다각도로 실험하는 김가범 작가의 많은 작품은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4-1)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관람시간은 월-일(10:30-18:30) 연중무휴로 운영,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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