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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위기 극복한 화천정산고 김유미 감독 “아이들이 큰 힘이 됐어요”


[뉴스시선집중, 이종성기자] 화천정보산업고등학교 여자축구부 김유미 감독은 지난해 팀 해체 위기를 겪으며 더욱 단단해졌다. 말 못할 고민이 많았고 마음고생도 심했지만 오로지 자신만을 믿고 따르는 선수들을 생각하며 악착같이 버텼다. 모든 위기를 극복한 지금, 김유미 감독은 새로운 꿈을 꾼다. 2020년은 그에게 있어 지도자 인생의 ‘제2막’이나 마찬가지다.

화천정산고는 2019년 롤러코스터를 탔다.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와 추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에서 우승하고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과 여왕기전국여자축구대회에서 준우승했으며 전국체육대회에서 3위를 기록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지만, 시즌이 한창인 7월 학교 측으로부터 축구부 해체 통지를 받으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2020년부터 전국단위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졌고 동시에 지원예산도 삭감됐다는 것이 학교가 내세운 이유였다.

복잡한 사정들이 얽히고설키며 상황은 심각해졌다. “저만 생각했다면 사실 그만두고 나가면 끝이거든요. 그런데 저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온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고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모르게끔 해결하려고 했는데 일이 너무 커졌어요. 아이들도 상황을 알게 되면서 저로서는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하지만 김유미 감독의 우려와 달리 선수들은 침착했다. 충분히 동요될 만한 상황인데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다. 어른스러웠다. “아이들이 운동을 하는 곳이 없어지느냐 마느냐의 중대한 문제였잖아요. 그 문제에 흔들릴까봐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런데 아이들끼리 스스로 미팅을 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걸 하자’고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해체 통보를 받은 후 김유미 감독은 학교 밖에서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감독의 공백은 민경아 코치가 메웠다. 다행히 선수들 스스로가 침착함을 유지했기에 분위기 수습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해체 통보를 받은 이후에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바빴어요. 솔직히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죠.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코치님과 훈련에 매진했어요. 덕분에 시즌을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팀을 지키겠다는 열망 하나로 버티고 버틴 김유미 감독이다. 다행히 그의 진심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다. 축구인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민이 나서 화천정산고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화천군 관계자와 강원도의회에서도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이들은 “조례와 지침에 따라 축구부 해체 추진 과정에서 선수와 교직원, 학부모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했지만, 이런 과정이 누락된 채 일방적으로 해체 통보가 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강원도 교육청이 감사에 들어갔고, 해체는 없던 일이 됐다.

“학부모님들이 뜻을 함께 해주셔서 많은 힘이 됐어요. 덕분에 아이들이 한 명도 떠나지 않고 이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천군 관계자분들과 강원도의원께서도 저희 학교 소식을 듣고 도움의 손길을 주셨어요. 이 일이 잘 마무리 돼 다행입니다.” 김유미 감독은 2019년 12월에 열린 KFA 시상식에서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해피엔딩이었다.

모두가 마음고생이 심했던 만큼 이제는 팀을 다시 어루만지는데 집중해야 한다. 김유미 감독은 ‘여자축구 명문’의 위상을 2020년에도 이어나가는 것이 목표다. 우선은 최상의 성적을 냈던 지난해의 모습을 올해도 유지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이 나이 대 아이들에게 뭔가를 맡겨놨을 때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지시를 강하게 내리기도 합니다. 선수 시절부터 저는 지도자가 되면 아이들에게 꼭 패스 게임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이걸 하려면 무한 반복이 중요하거든요. 아이들이 지겨워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일부러 더 시켰어요. 덕분에 지난 시즌 주요 대회에서 패스워크가 잘 살아나면서 좋은 경기를 했습니다.”

올해도 김유미 감독은 패스워크 위주의 축구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축구 외적인 면에서 변화를 시도해 볼 생각이다. 다양한 게 있겠지만, 핵심은 칭찬이다. 이유가 있다. “제가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였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칭찬에 인색한 편입니다. 일부러 안하는 게 아니라 쑥스러워서 잘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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