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스티브 그래닉 단장(UNIST 자연과학부 특훈교수)과 후안 왕 연구위원은 일반적인 화학반응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열로 모두 방출된다는 기존 상식을 뒤집고, 화학반응 뒤에 분자가 추진력을 얻어서 확산이 가속되는 것을 밝혔다.
분자는 화학반응을 할 때, 원자들 사이의 기존 결합을 끊고 새 결합을 형성하면서 다른 물질로 바뀐다. 이 때 발생하는 반응에너지는 국소적인 열 형태로 발산되어 사라지고, 분자 움직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기존 상식이었다.
연구진은 화학반응 시 분자 이동을 추적하여, 확산이 거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분석해 반응에너지가 기계적 에너지로 전환됨을 밝혀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최기영)와 IBS(원장 노도영)는 이번 성과가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IF 41.845)에 7월 31일 게재되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액체 용매 속 화학반응에서 증가하는 분자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 움직임이 기존의 열 방출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동력에 의한 것임을 규명하였다.
연구진은 먼저 용매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핵자기공명으로 관찰해 각 반응물 분자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실험 결과 반응 뒤 분자의 확산이 빨라지며, 이러한 확산은 열 방출로 대류가 일어났을 때의 분자 움직임 시뮬레이션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는 반응물이 열 이외에 다른 동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연구진은 촉매가 관여하는 반응이 일반 화학반응과 전혀 다른 형태의 분자 확산을 야기하는 것도 밝혀내었다.
서로 다른 15가지 화학반응에서 나타나는 확산 속도를 분석한 결과 촉매반응은 촉매 없는 반응보다 반응에너지 대비 확산 속도가 훨씬 가파르게 증가했다.
연구진은 추가로 촉매 농도가 불균일한 미세유체칩을 준비하고, 칩 안에서 용매 움직임을 관찰했다. 이 때 촉매 농도가 작은 쪽으로 용매가 이동했는데, 반응물 농도 기울기에서는 이러한 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반응 횟수 때문이 아니라 촉매 자체가 일반 화학반응과 다른 분자이동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화학반응의 에너지 개념을 다시 쓴 연구로, 화학반응에서 생기는 에너지가 물질을 이동시키는 기계적 에너지로 바뀐다는 것을 최초로 제시했다. 이는 분자 단위에서 동력이 필요한 초소형 로봇, 약물 전달 연구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티브 그래닉 단장은 “이번 실험에서 확인한 반응은 플라스틱 생산과 의생명공학 등에 일반적으로 쓰이는데, 여기서 분자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후안 왕 연구위원은 “자연에 존재하는 스스로 움직이는 물질들을 이해하고, 정교한 초소형 기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