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떠나고
세상살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잠시 쉼을 가질수 있는 추석이 떠나갔다.
정겨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삶을 노래했었는데 세상은
변심을 했나보다.
모두는 입을 굳게 닫고 천으로 말문도 닫고 고속도로를 질주해야 했다.
누구는 수평선 너머로 보따리를 챙겨들고 하늘을 춤추 듯이 날아갔고 누구는
지평선 저 너머로 떠났었다.
벽돌로 높은 벽을 쌓고 콘크리트로 사람 냄새를 막았던 광화문 네거리에
불빛만 요란하게 쓰러져 갔다.
배추 한포기는 가벼운 지갑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허허롭게 웃고 있다.
고등어 자반도 시린 어깨를 토닥여 주는 둔탁해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다 나 먹고살기 바빠서 움찔거리며 발버둥치던 시간은 감쪽 같이 사라지고
밥상 위에 덩그렇게 놓인 빈 그릇이 서글피 울고 있을 뿐이다.
2년 전으로 기억한다.
누구를 위해 발이 부루트도록 이골목을 저골목을 탐익하며 다닌 지금은
파란 하늘만 바라보는 백수가 되었다.
큰 저택에서 따끈한 밥사발이 굶주린 아낙에게 詩한수 ?어주며 그래
세상을 다 그렇게 흘러 흘러가다 강을 만나고 바다를 만난다고 했다.
날씨가 뚝하고 허리를 굽히게 되니 비로소 겨울 이야기가 생각난다.
콜록거리며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못보았던 얼굴이 보였고 어디선가 낮익은
얼굴도 늘 보는 수고도 생겨났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형도 못보고 동생도 못만났다.
새콤달콤 홍어무침도 그 맛을 못보고 담백한 돼지고기 산적 맛도 못봤다.
가지마오를 외치던 사내는 덥썩 세상을 호령하듯 너나 잘해라며 웃었다
그 웃음의 가치를 누가 가져갔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추석은 내년 이맘때 올 것이다. 그때는 까까옷을 입고 길을 나설것이다.
그 사람은 처음을 잊었는지 안부를 전한지도 꽤 오래됐다.
살아는 있겠지? 다른 소식을 아직 못 받았으니 말이다.
잘해라. 잘혀. 그 누구라고 말을 못하니 그런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