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시선집중, 임 장순기자] 송주희 감독의 경주한수원은 예년보다 탄탄해진 전력으로 리그 최강자인 인천현대제철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9월 7일 인천남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현대제철과 경주한수원의 2020 WK리그 13라운드. 원정팀 경주한수원은 이 경기에서 강유미와 나히의 연속골로 인천현대제철을 2-0으로 꺾었다. 앞선 12경기에서 무패행진을 달려오던 ‘우승후보’ 인천현대제철이 경주한수원에 발목을 잡힌 순간이었다.
막강한 전력으로 통합 7연패를 달성했고, 올해도 ‘당연히’ 우승을 노리고 있는 인천현대제철에 있어 송주희 감독의 경주한수원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경주한수원은 지난해 WK리그 정규리그에서도 인천현대제철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당시에는 두 팀의 승점 차(인천현대제철 승점 76, 경주한수원 승점 49)가 무려 27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15라운드 현재 불과 4점 차(인천현대제철 승점 40, 경주한수원 승점 36)밖에 나지 않는다. 리그 후반부 경기 결과에 따라 충분히 뒤집힐 수도 있다. (*주-경주한수원은 정규리그가 종료된 현재 승점 1점차로 인천현대제철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최근 상승세가 뚜렷하다는 점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경주한수원은 8월 3일부터 최근 열린 9월 24일 화천KSPO와의 경기(경주한수원 2-0 승)까지 여덟 경기 동안 승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선두 싸움에 제대로 탄력을 받은 셈이다. 당연히 송주희 감독과 선수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무엇이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줬을까?
화천KSPO에서 오랜 코치 생활을 끝내고 올 시즌 경주한수원의 사령탑이 된 송주희 감독은 가장 먼저 팀의 내실 강화에 신경 썼다. 팀을 한 번에 무리해서 바꾸는 것보다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개선점을 찾으려 했다. “경주한수원은 제가 감독이 된 순간부터 이미 좋은 선수들과 좋은 훈련 환경이 갖춰진 상태였어요. 잘 짜인 판에 저와 코칭스태프가 들어온 셈이죠. 문화를 한 번에 바꾼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어요.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으로 접근하려 했죠.”
송주희 감독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훈련이었다. 팀이 유지되기 위한 가장 큰 원동력인 훈련이 제대로 돌아가야 경기에서도 좋은 퍼포먼스가 나온다는 게 송 감독의 생각이었다. “운동장에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도 중요하지만 지도자가 보여줘야 하는 퍼포먼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가 몇 발 앞서 있어야 하는 이유죠.”
송주희 감독은 훈련을 철저한 분업 시스템으로 운영했다. 송주희 감독을 비롯해 수석코치, GK코치, 트레이너, 전력분석관 등이 수평관계로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많은 팀들이 다수의 코칭스태프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감독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죠. 저는 저와 모든 코칭스태프가 수평관계에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그래야 코칭스태프 각자가 가진 생각을 자유롭게 꺼낼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피지컬 트레이너들은 경기에서 근육이 올라온 선수가 많다고 하면 워밍업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고민해서 이야기해요. 분석관은 지난 경기보다 내용이 좋지 않다고 하면 무엇이 안 좋은지 (영상을 보며) 저와 함께 고민하죠. 수석코치도 저와 수시로 소통하고 제가 원하는 걸 선수들에게 잘 전달해줍니다. 결국엔 팀이 세련되게 가는 거죠. 단체 생활이고 요즘엔 인권 문제도 중요하기 때문에 (감독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것보다는) 세련된 문화로 팀을 이끌어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수평적, 유기적 협력은 결국엔 선수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경주한수원을 맡게 된 첫 해인 만큼 저와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에게 좋은 서비스와 교육을 해줄 준비가 됐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선수들이 지도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개선하고 싶었거든요. 감독이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저희도 선수의 시선에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저희 세대가 그런 문화를 준비하는 세대죠.”
송주희 감독은 인터뷰 내내 ‘세련됨’을 강조했다. 인천현대제철과의 13라운드를 앞두고서도 그만의 세련된 언어로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인천현대제철과의 첫 번째 맞대결(7월 13일 0-0 무승부)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해줘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비겼어요. 두 번째 맞대결에서는 이기진 못해도 지지 않는 경기를 하고 싶었죠. 훈련 때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런 얘기를 했어요.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고맙다. 이제는 7년의 침묵을 깨야할 때가 왔는데, 그 시작점에 우리 팀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요.”
7년의 침묵은 인천현대제철의 통합 7연패를 뜻한다. 이제는 누구든 이를 깰 때가 됐는데 그 시작이 경주한수원이길 바란다는 의미다. “선수들이 경기에 굉장히 침착하게 임해줬고 결국 이겼어요. 너무 고맙죠. 기쁘고요. 하지만 인천현대제철을 한 번 이긴 게 특별한 날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승 트로피를 드는 순간까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니까요.”
“저희 팀에는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아요. 제가 뭔가를 가볍게 얘기해도 선수들은 이를 신중하게 받아들이죠.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의 생각을 빠르게 캐치하고, 그 공기를 빨리 느끼며 뭔가를 구현하려는 모습들이 너무도 프로다워요. 그래서 저도 늘 선수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요. 하면 할수록 선수들이 준비된 자원이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여자축구 1세대, 9년간의 코치 활동, 그리고 초보 감독까지. 이 모든 과정을 온전히 소화하기까지는 가족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저는 사회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가정이 먼저고 그 다음에 사회라고 생각해요. 지난 10년 동안 집에서 아이들을 다 키웠죠.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있고요. 제가 10년 동안 만들어 놓은 것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서 해낸 부분들이 부족하지 않게 만들어준 남편(양현정 의정부 광동 U-18 감독)이 큰 힘입니다.”
송주희 감독은 경주한수원을 색깔 있는 팀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우승을 향해) 흐름도 탔고 선수들도 마음의 준비를 냉정하게 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것만 바라보고 가는 게 맞아요. 내년 계획을 조금 더 고민한다면, 전술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시도해보고 싶어요. 시행착오를 많이 만드는 해가 될 수도 있겠죠. 다양한 경험과 시도로 경주한수원을 색깔 있는 팀으로 만드는 것이 제가 지금 당장, 아니 적어도 1년 안에 꼭 이루고 싶은 일입니다.”
“그렇게 팀을 명문으로 만들어 놓고 난 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제 후임은 꼭 여성 지도자였으면 좋겠어요.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어요. 제 자리는 우리 후배들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서 정말 잘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