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에서 생각나는 왕과 왕비들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얼마 전,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함께 거주한 선후배들이 강남구 선릉역에 있는 선릉과 정릉으로 역사기행을 갔다. 선릉은 조선 9대 성종과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고,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이다.
성종은 숙부 예종이 왕 위에 올라 1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 정희왕후 윤씨의 명으로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정희왕후 윤씨의 수렴청정을 7년 동안 받았다. 장손인 제안대군은 왕의 기회를 놓힌 아쉬움을 장녹수와 달래다가 후에 장녹수를 연산군에게 보낸 장본인이다. 그는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종은 12명의 부인과 28명의 자녀가 있고, 주요인물로 한명회가 있다. 주요여인으로는 어머니 인수대비, 공혜왕후(한씨), 폐비윤씨, 정현왕후(윤씨), 엉동, 소춘풍이 있는데, 수많은 군주 중 여자가 많은 왕이었다. 특히 부인 폐비윤씨 때문에 아들 연산군의 폭정도 시작된다. 조선왕조에서 왕비들이 파평윤씨가 많다. 고려의 명문 가문 윤관장군의 후예들이다.
선정릉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정릉이 있다. 정릉(靖陵)은 성종과 부인 정현왕후의 아들 중종(中宗)인데, 연산군이 폭정으로 폐위되고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중종의 능은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중종과 함께 묻히기를 원한 문정왕후는 태릉(泰陵)에 능이 있다.
중종은 창경궁 환경전에서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38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12명의 아내와 20명의 자녀를 두었고, 단경왕후(치마바위 신씨), 장경왕후(윤씨, 인종의 생모), 문정왕후(윤씨, 명종의 생모), 이 시절 황진이가 있다.
성종과 중종은 왕위계승의 불협화음 때문인지 괴로움을 이겨 내려고 부인들도 많고, 자식들도 많이 두었다. 이 시절 한명회는 딸이 4명이었는데, 큰딸은 세종의 외손자에게 시집 보냈고, 둘째 딸은 신숙주의 아들에게 보내 사돈을 맺었다. 그리고 셋째는 세종의 손자(예종)에게 시집보냈고, 넷째는 세종의 중손자(성종)에게 시집보냈다.
조선시대 권력을 휘두른 수렴청정한 대비들을 보면, 정의왕후(세조비)는 성종에게, 문정왕후(중종비)는 명종에게, 인순왕후(명종비)는 선조 뒷자리에 앉아 나랏일을 보았다. 그리고 정순왕후(영조비)는 순조에게, 순원왕후(순조비)는 헌종과 철종에게, 선정왕후(조대비, 효명세자빈)는 고종의 뒷자리에서 호령을 했다. 한편 조선시대 또 다른 유명한 여인들은 장녹수(연산군), 정난정(윤원형의 처), 장옥정(장희빈), 김개시 등이 있고, 황진이, 매창, 홍랑 같은 아름다움과 멋을 겸비한 기생들도 있었다.
그동안 조선시대 왕릉을 많이 가보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수를 받으며, 왕과 왕비, 후궁 등과 어진 신하, 몰염치 신하, 나라를 구한 장군 등 영웅들에 대하여 공부하고 연구를 해보았다. 모름지기 군주란 아첨하는 여인들과 간신들을 멀리하고 나무보다 숲을 보며 훌륭한 신하가 많아야 한다. 왕릉에서 생각나는 왕과 왕비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우리는 조선시대 세종과 영조, 정조를 훌륭한 왕으로 모신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권력은 영원하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모두 집안부터 잘 다스림도 중요함을 잊지 말자./ 논설위원
P.S. 역사문화탐방 후 청담동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와인으로 송년회를 하며, 후배 화가가 초상화를 그려서 증정식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