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혜
아버지는 어느 날 흰 달빛을 마신 산삼을 캐오셨다
이것만 먹으면 만병통치란다
열다섯 식구는 아껴가며 오래 씹었다
달을 따올 것처럼 힘이 솟구쳐 마당을 뒹굴었다
깨끗이 씻은 달은 오염이 없다
희디흰 새순 같았다
새순이 자라서 나무가 되어 달까지 뻗었다
큰 나무는 그늘이 되어 온 하늘을 덮어 버렸다
밑에는 캄캄한 밤만 이어지고 산 것들은 시들어가고 있어도
산삼을 먹은 나무는 더욱 왕성하게 자란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큰 나무는 스펀지처럼 기운을 빨고
땅은 길게 누웠다
영양실조에 걸린 땅을 흰 달이 조용히 내려다본다
아버지는 이제 알았다
흰 달빛을 마신 산삼을 먹지 말아야 했다는 것을
어느 날
키가 하늘에 닿은 나무는 흰 달의 눈을 찌르고 말았다
나무는 허물만 남기고 허공 속으로 사라져 갔다
쨍쨍한 햇살이 온 대지를 어루만진다
이제 흰 달이 보이지 않는다.
강은혜
시인/시낭송가
天地詩낭송회 회장
한맥문인협회 이사
양천문인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성평생대학원협력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