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파사산성과 명성황후 생가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5월 가정의 날을 앞두고 여주시 대신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5대 파사왕 당시 초축된 것으로 전해지는 성곽. 산성. 사적을 둘러보았다. 파사산성은 여주시 대신면과 양평군 개군면 경계에 해발 230m의 파사산 정상에 있다. 이 산성은 6세기 중엽 이후 만들어졌고,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파사니사금(婆娑尼師今) 때 축성되었기 때문에 파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파사국(婆娑國)의 옛터가 있어 파사성으로 불리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문헌적으로 뚜렷한 근거는 없다.
이 성은 백제의 축성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성벽의 축성방식과 현문구조, 성돌의 치석방법 등으로 미루어 6세기 중엽 이후 한강유역으로 진출한 신라에 의해 초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개축하였다. 파사성은 주변에 험난한 산지가 없으며, 파사산 정상부에서는 양평과 여주 일대의 넓은 강안 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따라서 이곳을 통해 남한강 하류나 상류 방향으로 진입하는 외적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성에서 북쪽으로 이포(梨浦)나루가 있어 남한강의 수운로에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한 강변의 육상교통로는 충주에서 시작하여 여주-양평-서울로 이어지는 남한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이러한 육상과 하천교통로는 중부내륙지역과 서울, 그리고 황해를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인데, 파사성은 지정학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조선 고종 황제의 부인 명성황후 민씨 생가를 방문했다. 명성황후는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다 일본인에 의해 시해당하여 일생을 마쳤던 그녀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감고당은 인현왕후의 사저이며 명성황후가 8살에 이사하여 왕비 간택 전까지 머물렀던 곳으로서 영조가 감고당이라 명하였으며 처음에는 안국동에 있었다. 그 후 쌍문동으로 이전하였다가 여주시에서 인수하여 이곳에 중건을 완료하였다.
마지막으로 가끔 가던 화담숲을 갔다. 이 숲은 LG그룹이 조성한 자연 친화적 숲으로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많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숲은 나무들이 연두색으로 봄을 노래하며 방문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숙소는 같은 단지에 있는 곤지암 리조트를 LG그룹에 다니는 아들이 예약을 해주어 코로나로 힘들었던 스트레스를 풀며 여행을 마감했다.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