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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자이언트 킬링은 쉬운 게 아니야


[뉴스시선집중, 임 장순기자] K3리그 양주시민축구단이 FA컵 ‘디펜딩 챔피언’이자 K리그1의 강호인 전북현대를 꺾었다. 박성배 감독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감격해 마지않았다.

박성배 감독이 이끄는 양주는 2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하나은행 FA CUP 16강전에서 전북과 연장전까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10-9로 승리했다. ‘자이언트 킬링’이다.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쉽지 않은 경기였다. 경기 시간 동안 전주성을 비추던 블러드문(개기월식 때 달이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달)은 과거 흉조로 여겨지던 자연 현상이지만 이날의 양주에만큼은 확실한 길조였다.

같은 시각 다른 K3리그 팀들도 프로팀과 맞대결을 펼쳤으나 8강 진출을 이뤄낸 것은 양주뿐이었다. 김해시청은 대구FC에 정규시간 0-2로 패했고, 부산교통공사는 전남드래곤즈와 연장전까지 2-2 접전을 펼쳤으나 승부차기에서 석패했다. 8강에 오른 유일한 비-프로팀이 된 양주는 세 팀 중 현재 K3리그에서의 순위가 가장 낮다.

양주는 올해 K3리그에서 현재 3승 2무 4패로 15개 팀 중 12위에 자리해있다. 최근 경기인 지난 22일 경기에서는 청주FC에 0-6 대패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양주가 지난해 FA컵과 K리그1을 모두 석권한 전북을 꺾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전북은 최근 리그 3연패로 부침을 겪는 중이나 양주와 비교할 때 객관적 전력이 매우 앞선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김상식 전북 감독은 경기 전 “양주는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실상은 그 이상이었다. 양주는 경기 초반부터 김여호수아와 이종한을 앞세운 적극적인 공격으로 기동력을 뽐냈다. 다소 당황한 듯 보이던 전북은 차츰 전열을 가다듬고 골 사냥에 나섰으나 이번에는 양주의 파이팅 넘치는 수비에 고전했다. 전반 16분 백승호의 프리킥, 전반 37분 구스타보의 헤더는 골키퍼 박청효에게 막혔고, 전반 38분 김승대의 슈팅은 골문을 살짝 벗어났다.

양주는 후반전에도 전북의 공격을 속속 막아냈다. 전북은 수차례 세트플레이로 골 기회를 잡았으나 양주의 악착같은 수비에 막혀 정확성을 놓치고 힘을 잃었다. 양주는 후반 추가시간 쿠니모토의 슈팅까지 박청효의 선방으로 막아낸 뒤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야 그라운드 위로 쓰러졌다.

연장전에 돌입했을 때, 양주는 너나할 것 없이 매우 지친 모습이었다. 아웃 오브 플레이 상황마다 손을 무릎에 짚고 크게 숨을 골랐다. 박성배 감독은 선수 교체를 통해 조직력을 유지하고자 했고, 선수들은 남은 힘을 짜내 집중력을 발휘했다. 결국 연장전 30분마저 방어해낸 양주는 또 한 번 그라운드 위로 쓰러졌다.

수훈갑은 단연 골키퍼 박청효였다. 경기 중에도 안정적인 캐칭과 결정적인 선방으로 양주를 위기로부터 구했던 박청효는 승부차기에서도 맹활약했다. 실축과 선방, 파넨카킥과 파넨카킥이 맞부딪치며 길게 이어지던 승부차기에서 침착하게 상대의 킥 방향을 읽어냈다. 그리고 11번 키커로 직접 나서 킥을 성공시킨 뒤, 이어진 전북 골키퍼 이범영의 킥을 팔을 위로 쭉 뻗어 쳐냈다. ‘디펜딩 챔피언’을 무너뜨린 선방이었다.

경기 후 박청효는 “선수들이 잘 뛰어주고 버텨줘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나는 한 게 없다”며 겸손해했다. 비교적 젊은 선수들이 많은 양주에서 베테랑격인 31세 박청효는 “전북전을 준비하면서 선수들과 이기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즐기자고 했다. 전북 같은 강팀과 경기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회 없이 많이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청효는 2013년 경남FC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으나 K리그에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2016년 강릉시청(현 강릉시민축구단) 소속으로 내셔널리그(현 K3리그와 통합) 시즌 MVP를 수상할 만큼 인정받는 골키퍼이기도 하다.

포천시민축구단을 거쳐 올해부터 양주와 함께 하고 있는 박청효는 지난 3라운드에서 전 소속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16강에 진출했다. 무엇보다 16강에 진출해 K리그1 강호인 전북과 맞붙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는 “K3리그는 K리그1보다 아래인 리그지만, 선수들이 K리그1 팀과의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 그만큼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더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박성배 감독 역시 “전북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팀이고 K리그를 상징하는 팀이다. 그런 팀과 경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다. 이런 큰 경기장에서 FA컵이라는 큰 대회를 치르는 것도 처음 경험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런 것들이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춤추게 했다”며 양주가 이번 경기에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었던 비결을 전했다.

승리 소감을 묻자 박성배 감독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북은 박성배 감독의 첫 프로팀이기 때문이다. 박성배 감독은 1998년 프로에 데뷔해 6년간 전북에 몸담았다. 그는 “고향 같은 팀에 와서 경기를 한 것이라 승패를 떠나 만감이 교차한다. 미안한 마음도 크다”며 입을 뗐다.

박성배 감독은 “한 마디로 처절한 경기였다. 4개월 동안 만들어진 팀이다. 그냥 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간의 교감과 헌신이 없었다면 이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 모두를 칭찬하고 싶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양주 감독으로 부임해 짧은 시간 동안 팀의 변화를 이끌어온 그다.

말 그대로 거인을 무찌르고 ‘자이언트 킬링’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해 박성배 감독은 “자이언트 킬링은 말처럼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큰 성취감을 드러냈다. 그는 “물론 운도 따랐고, 무엇보다 선수들의 의지가 정말 강했다. 훈련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발로 뛰며 확인시켜줬다. 그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선수들을 칭찬했다.

박성배 감독은 먼저 청주전 0-6 대패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나와 선수들 모두 일생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결과가 나와서 사실 굉장히 다운됐었다”면서 “이번 전북전은 즐기러 온다는 마음으로 왔지만 초반 실점을 잘 막는다면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연습의 결과”라고 밝혔다.

전북전 승리는 양주에 자신감을 되찾아줬다. 되찾은 것으로 모자라 더 얻었다. 박성배 감독은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로테이션을 통해 다음 리그를 준비할 것이다. 선수층이 얇은 상황이지만 이번 기회로 자신감을 얻었다. 큰 경기를 잘 치러낸 것이 큰 발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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