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마음과 남편 마음
올해 친정어머니 연세가 아흔다섯이다. 우리 집으로 오시기 전에는 창원시에 사는 남동생이 모셨다. 마음이 곱고 여린 엄마는 여자로서 자격과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씨, 음식과 옷을 다루는 솜씨, 얼굴과 나들이하는 맵시?등 내가 어릴 적 옆집 아주머니들이 택호(宅號)가 행동댁인 엄마에게 “행동댁은 법이 없어도 살아갈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진주시 외곽 시골이 고향이지만 엄마의 자태가 자랑스러웠다.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에게 우울증이 찾아와 남동생 부부에게 요양원으로 보내 달라고 자주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유는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며 요양원을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성장할 때까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자식들 모두 성장하고 결혼하여 이제는 효도를 받을 나이인데, 미안하고 죄스러워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을 해보았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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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幼年)시절의 추억과 신중년의 삶
“미야, 오늘 만나서 반갑다. 자주 연락하고 즐겁게 살자.” 다른 동네에 살던 남자 동기가 고교 동창회에서 만나 미(美)야라 부른다. 필자는 58년 개띠로 우리 할머니가 딸이 귀한 집안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고 귀하고 예쁘게 짓는다고 ‘미야’라고 지었다고 하였다. 어릴 적 미야라고 불러오다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니 명찰에 강영숙으로 바뀌었다. 고향에서 초?중?고를 다니다 보니 모두 아는 사이라서 미야라 불러주고 지금도 동창회에서 미야이다.
유년(幼年)시절 할머니께 받은 사랑은 여러 가지 추억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떼를 쓰다가 가끔 맞기도 하며 자라서 철들 때까지 친엄마가 아니라고 생각도 했다. 어느 해 옆집 둘이와 놀다가 싸움이 붙어 머리를 쥐어뜯기고, 서러움에 울면서 고함을 지르며 집에 왔다. 할머니가 우는 손녀를 보고 속이 상해서 보따리장수 아주머니에게 귀한 말린 인삼을 많이 샀다. 그리고 절구에 빻아서 오빠들 몰래 아침마다 한 숟가락씩 입에 넣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이것 먹고 둘이한테 절대로 맞고 오지 말라고 당부를 한 생각을 하면 할머니가 그립다. (이하생략)
강영숙 프로필
*한국문학예술인협회 자문위원
*비둘기 창작사랑방 4기 회원
*안산 풀잎문학회 1기 회원
*화성시 송린 이음터 도서관 도서위원
*안산시 K-POP 아카데미 합창 단원
*아트플랫폼[연작] A-Story 단편 기고
당선 소감
강 영 숙
연두색 나무들과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날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의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사람들과 대면을 할 수 없는 날들이 많다. 이렇게 모두 지쳐있을 때 작으나마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바램으로 썼지만 부족하고 부끄럽다.
작품 속에 어머니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현재 중증 장애 2급의 95세 친정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노모를 모실 수 있게 도와주고 힘이 되어준 남편과 항상 응원해주는 두 아들이 고맙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여동생과 이 영광을 함께 누리고 싶다. 동생이 도와 주지않았다면 나 혼자서는 어머니를 모실 수 없었을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문학소녀의 꿈을 갖고 일기장에 시와 수필을 꾸준히 써왔는데, 결혼 후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들 키우며 분주하게 보냈다. 그러다 ‘비둘기 창작사랑방’에서 류시호 지도교수님을 만나 수필의 매력을 알았고, 등단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남편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뒤에서 많은 응원을 해주어 힘이 되었고,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한국창작문학 심사위원들님과 심의표 이사장님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한국창작문학 작가님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좋은 인연이 쭉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