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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활동) 심훈 생가터와 동상 그리고 시비(詩碑) / 류시호 논설위원

호국 보훈을 기리며 문학의 길을 걷던 심훈 선생을 생각하는 시간
흑석동 심훈 생가터와 동상 그리고 시비(詩碑)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중략)/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이 시는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다. 심훈(沈熏)은 필명이고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그는 소설가, 민족저항시인, 독립운동가, 영화인, 언론인이었다.

지난 주말, 한국문학예술인협회(상임고문 류시호, 회장 한규원)의 회원들과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흑석동에 있는 심훈의 생가터와 동상 그리고 시비(詩碑)를 찾아 문학기행을 했다.

생가터는 지하철 9호선 흑석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걸린다. 현재 동작경찰서 흑석동 지구대 쪽에 있는 성당 정문 왼쪽 앞 화단에 심훈 생가터표석이 있다.

흑석역 1번 출구 앞에는 원불교 교당 옆 노들역 방면으로 왼쪽에 효사정공원이 있다. 공원 안에는 효사정과 심훈 동상 및 심훈과 관련한 안내판들이 있다. 효사정(孝思亭)은 세종 때 우의정이었던 노한(盧?)의 효성이 담긴 정자이다.

심훈은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쓴 소설가로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1981년에는 일본에서도 이 책이 번역·간행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3·1운동에 참여하여 투옥과 함께 퇴학당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수학하다가 1923년에 귀국했다. 최초의 영화소설 <탈출>, 영화 <먼동이 틀 때>, <그날이 오면>, 소설 <상록수> 등의 작품을 남겼다.

몇 년 전, 문학 단체에서 충남 당진군의 필경사와 심훈 기념관을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심훈 선생이 문학창작 활동을 위하여 내려와 상록수를 집필 한 곳이기도 하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흑석동에 있는 심훈의 생가터와 동상 그리고 시비를 보며 함께 한 일행들과 호국 보훈을 기리며 문학의 길을 걷던 심훈 선생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었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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