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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정조의 도시' 정조의 숨결을 기록하다


[뉴스시선집중, 윤금아기자] 수원은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정조대왕이 계획한 도시다.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고 수원화성을 쌓은 정조대왕의 손길은 수원시 곳곳에 남아 있다. 덕분에 오늘날 수원은 정조대왕으로부터 물려받은 유형과 무형의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함과 동시에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발전했다.

수원박물관은 수원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 후기 성군 정조대왕의 서거 220주기를 기념해 관련 학술총서 두 권을 연속 기획 제작했다. 2019년 발간된 '정조어필'과 지난 6월 말 출판된 '융건릉'이다. 정조대왕을 기리는 학술총서를 통해 효원의 도시이자 성곽의 도시, 개혁의 도시인 수원의 정체성을 되돌아본 셈이다.

◇아버지를 그리며 함께 영면한 ‘융건릉’

완벽하게 보존된 단일 왕조의 능침인 조선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의궤 등의 문헌자료에 조성 기록이 남아 있고, 자연환경 등이 잘 갖추어진 점을 널리 인정받은 것이다. 조선왕릉 중에서도 역사성과 석물의 예술성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융릉과 건릉이다.

수원박물관이 정조대왕 서거 220주기를 기념해 발간한 학술총서 '융건릉'은 조선왕릉 중에서도 역사성과 석물의 예술성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는 융릉과 건릉을 집중 조명한다. 생부를 영원히 지키고자 그 옆에 영면한 정조대왕의 깊은 효심이 깃든 융건릉의 역사적 위상과 예술적 가치를 통해 수원의 정체성을 되새길 수 있다.

학술총서는 해당 분야 연구의 소장학자 간송미술관 김민규 연구원이 논고 집필과 사진 촬영 및 편집을 전담했다. 특히 조선왕릉 가운데 개별 연구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다른 왕릉의 연구에도 새로운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장조와 헌경왕후의 융릉은 1762년 사도세자 수은묘로 처음 조성된 후 1776년 장헌세자로 상시되고 영우원으로 높여 봉원됐다. 1789년에는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천봉돼 현륭원으로 이름을 고치고, 모든 석물을 새롭게 제작해 배치했다. 1816년 혜경궁 홍씨가 합부되었으며, 1899년 장조와 헌경왕후로 추존되고 융릉으로 높여졌다.

건릉은 융릉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1800년 정조대왕이 승하하자 현륭원의 동쪽에 조성됐으나 1821년 효의왕후 승하후 합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풍수적인 고려에 따라 현재의 자리로 옮겨 합부릉이 조성됐다. 최근 정조대왕 건릉의 초장지가 발굴되면서 조선왕릉 옛터로 발굴된 귀중한 사례가 되기도 했다.

연구서에는 이처럼 추존, 봉원, 봉롱, 천봉, 능지발굴 등 조선왕릉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거친 융릉과 건릉의 학술적 위상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석장들이 수 년여 간 공들여 제작한 가장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석물의 예술성과 그 가치도 화보에 상세히 기록했다.

◇정조의 명필 29점을 보여주는 ‘정조어필’

조선시대 군왕 중에서도 학문이 뛰어났던 것으로 잘 알려진 정조대왕은 필법에 정통하고 글씨를 잘 쓴 명필이었다. 정조대왕이 남긴 한문과 한글로 된 다양한 문서들은 수원박물관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국공립박물관과 사립박물관, 개인 소장가에게도 소장되어 있다.

수원박물관은 정조대왕 서거 22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정조대왕의 필적을 모아 지난 2019년 '정조어필'을 발간했다. 정조대왕의 진적을 비롯한 다양한 필적 29점이 도록 형태로 수록돼 있다. 정조대왕이 남긴 글씨들의 예술적·학문적 가치들을 학술적으로 집대성한 학술총서다.

필적 설명과 논고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우 교수가 집필했다. 기존에 널리 알려진 정조대왕의 필적뿐만 아니라 그간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던 필적들도 자세하게 공개돼 관련 연구기관이나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수록된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은 수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28호 ‘정조예필-주희시첩’이다. 정조대왕의 세손 시절 예필이다. 13세 무렵 여러 색의 작은 분지에 사언구 두 가지를 쓴 것과 21세 무렵 남송의 유학자 주희의 칠언절구 8수를 쓴 것이 합쳐져 38면이 묶인 책이다. 어린 시절 기본적인 필법 위에 기필을 좀 더 뾰족하게 하고 점획을 떼어 쓰는 정조대왕의 필사는 1776년 3월 영조 승하 후에 쓴 '원릉표석 음기'와 사도세자에게 ‘장헌’이란 시호를 추상하고 묘소를 영우원으로 봉하고 사당을 경모궁으로 격상시키고 쓴 '영우원표석 음기'로 이어진다.

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25호 ‘빈풍칠월편’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정조가 한글로 '시경' 빈풍 '칠월'편의 한자음을 쓰고 토를 단 첩이다. 정조가 남긴 한글 필적이 드문 편이라 귀중하게 여겨지는 자료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의 ‘한글어찰’도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조명됐다. 정조가 누이동생 청선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를 기증받은 것이다. 편지에는 ‘그사이 이어서 잘 지내느냐/ 본지 오래이니 섭섭하다/ 나는 더위기운으로 앓고 지낸다/ 안부를 알고자 잠시 적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름철 누이동생과 안부를 주고받는 성군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양한 필적이 담긴 정조어필을 통해 조선시대 역대 임금 중에서도 글씨에 제일 뛰어났던 정조대왕의 예술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수원박물관은 정조대왕을 기리며 수원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기록한 두 권의 학술총서를 전국 국공립박물관과 도서관으로 배포할 계획이다.

임용순 수원박물관장은 “이번 학술총서 발간을 통해 문무를 겸비해 개혁 정치를 추구하고,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던 애민군주 정조대왕을 다시 되돌아보며 자랑스런 수원의 정체성을 새삼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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