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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문학의 봄 통권62호(발행인 이시찬)/류시호 논설위원

고려청자, 나전칠기와 수월관음도 같은 귀중한 불화(佛?)들이 국제무역을 통하여 서방 세계에 코리아를 알렸고,

우리의 자랑 고려 명품전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최근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소장 고려 시대 공예품 여덟 점전시회를 갔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고려청자 6점 중 5점은 1888년 조선에 파견된 최초의 주 조선 프랑스 공사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가져간 수집품으로 세월이 지나 벨기에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청자 5점은 <청자 상감 구름 학 무늬 발>, <청자 상감 물가 풍경 무늬 발>, <청자 상감 물가 풍경 무늬 병>, <청자 상감 물가 풍경 무늬 표주박 모양 병>, <청자 상감 포도 동자 무늬 표주박 모양 주자>이다.

우리 고궁 박물관은 벨기에 박물관에 있는 고려 청자들이 오래되어 변질되고 깨어진 부분을 국내에 가져와 보존·복원 처리를 끝내고, 벨기에로 보내기 전 특별 공개했다. 보존처리를 마친 우리 문화재는 국내·외 전시와 연계 심포지엄을 통해 공개했다. 한국의 문화재는 20개가 넘는 나라에서 20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안전하게 보존되어 활용될 수 있도록 국외 소재 문화재 보존·복원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러 해 전, 서울교대 류재만 교수에게 미술 감상과 비평 교육의 방향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청자가 발달한 이유를 보면, 중국에서는 옥을 중요하게 취급했고 장례식 때 무덤에 귀한 옥을 넣었다. 그런데 옥이 비싸니 옥 대신에 무덤에 청자를 넣었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향을 받았다. 고려가 건국되기 전, 호족들과 선종 스님들이 청자 잔에 녹차를 즐겨 마셨고, 귀족들도 청자 잔에 차를 즐겨 마셨다.

그리고 왕은 금, 은으로 된 수저를 사용했는데, 평민들은 금과 은이 귀해서 사용을 못 하였고 고관들은 옥 대신에 청자를 즐겨 사용했다. 평소에 청자 잔에 녹차를 즐겨 마시다 보니 고려 시대 다원(茶院)은 흔했다. 그러한 연유로 가정에서는 명절에 차()를 갖고 조상에게 차례(茶禮)를 지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곳에서 청자를 만들었지만, 강진이 흙과 땔감인 소나무가 적당해서 강진에서 청자를 많이 구웠다.

우리는 고려청자가 위대한 예술품이며 색이 일품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막상 고려청자의 색이 왜 아름다운지 이유를 대라면 막막해진다. 실제로 보면 청자의 색은 대부분 청색보다 어두운 녹색에 가깝다. 디자인 인문학자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는 고려청자는 옥 특유의 질감과 색을 가장 정확하게 재현했기 때문에 최고의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선조들은 고대시대에 만든 청동검, 중세시대 만든 청자, 한지, 온돌, 한글 등 우리 민족의 손재주는 세계 최고이다.

고려 시절, 고려청자, 나전칠기와 수월관음도 같은 귀중한 불화(佛?)들이 국제무역을 통하여 서방 세계에 코리아를 알렸고, 금속활자, () 문화의 발달은 문화국가임을 증명한다. 우리가 가진 창의성과 독자성, 뛰어난 예술성은 우리 몸에 흐르고 있는 또 하나의 한국인 유전자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250개 이상의 국가로 수출을 하고, 세계 6위의 수출국으로 10대 경제 대국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온전한 미()와 색()을 되찾은 고려 시대 공예품이 지닌 의미와 매력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자랑 고려 명품전을 보면서 세계 4대 경제 강국으로 으뜸서길 고대해본다. P.S. 본 원고는 3500자인데 지면 관계상 1700자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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