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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의 문학] 김학철의 낙천적 사회주의 세계관

김학철의 낙천적 사회주의세계관    

1940년대에 들어와 김학철의 운명은 크게 반전된다. 김학철 문학을 전체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기제의 하나는 그의 세계관이다. 일반적인 보통인간의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초능력은 무엇인가. 그의 작품전편에 잠복되어 있는 웃음과 해학이다. 그것은 동시에 그의 낙천성의 사회주의적인내방식이다. 그가 광복되어 서울에 나타나서 194510월에 찍은 첫 번 째 그의 사진(김학철, 최후의 분대장, 앞부분 사진)을 보면 건장하고 너무나 해맑은 얼굴이다. 두 지팡이를 짚고 있으면서도 태양같이 당당하게 서 있는 청년을 보게 된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물론 일시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으나 그는 평소에도 그렇게 맑고 밝은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한 달관적인 세계관과 웃음의 장치는 세속적 인간성을 초월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24년을 어두운 감옥생활에 갇혔어도 건강하게 85세를 살아낸 것이다.

26(1942)의 청년으로 태항산 격전 중 그는 일본군 포로로 잡혀 치안유지법위반’ (정치범) 죄명으로 나가사끼 형무소에 수감된다. 41(1957)의 중년시절에는 <해란강아 말하라>로 반동으로 숙청당해 24년간 강제노동으로 시달려야 했으며, 196751세에는 <20세기의 신화>로 다시 반동 반혁명 죄명으로 긴긴 어둠의 세월을 지내야 했다. 여기에서도 역시 반성문을 쓰지 않아 갖은 모욕을 당했지만 역시 세상을 달관하며 극복한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 <해란강아 말하라> <20세기 신화> <격정시대> 등의 작품 속에서 낙천성과 유모어가 일관되게 나타난다.

비극적 극한상황 속에서는 비관하여 절망하기보다는 세상을 초월하는 낙천성이 어쩌면 엄혹한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효과적인 기제일지도 모른다. 그의 특유한 사회주의적 낙천성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그는 나가사끼 형무소 독방에 수감되어 있을 때, 곪아 썩어서 잘려나간 자기의 한쪽 다리를 형무소 마당에서 주워온 일본인 간수 스기우라와 함께 그것을 남의 다리 같이 쳐다보며 박장대소를 한다.     

, 네 그 다리 묻어놓은 걸개들이 들어와 싹 다 파헤쳤다. 서로 물어가겠다고 쌈질하는 걸내가 마구 때려 쫓았다. 묻을 때 아마 너무 옅게 묻었었나봐- 네 뼈다귀한번 보겠니? (중략) 불과 몇 분 후에 내 그 백골화한 다리를 새끼 오래기에 매여들고 신바람이 나서 돌아왔다. 뼈는 희지 않고 거믓거믓 하였다. 엷게 덮인 흙으로 노상 비물이 스며들어서 썩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무릎마디와 복사뼈와 발가락들은 다 깔축없이 고스란하고 온전하였다. 나는 제 해골의 일부를 눈 앞에 보는 것이 신기해서 웃고 스기우라는 나에게 희한한 구경을 시켜준 것이 대견해서 웃고민족이 다른 두 젊은 친구는 잠시 옥중인 것도 잊어버리고 유쾌하게 웃음통을 터뜨렸다.       

태항산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포로로 잡혀온 그에게 단지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정부는 36개월간이나 치료를 해 주지 안하고 방치하여 결국 20대 젊은이의 다리를 절단하게 된 것이다. 그 절단된 자기의 다리를 쳐다보며 웃음통을 터뜨린다는 세상을 초월한 낙천적 사회주의 신념이다.’ 언젠가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독립이 되고 또한 인간적 사회주의 세상이 온다는 확신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김학철은 극한적 불행 앞에서도 언제나 여유가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한쪽 다리를 잃음으로 해서 그는 군인으로서의 인생이 아닌 문학가로서의 운명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비탄에 잠겨 있는 서울의 누이동생 김성자(당시 교원)에게 자신만만하게 편지를 썼다. 사람의 정의는 인력거를 끄는 동물이 아니다. 다리 한짝쯤 없어도 문제 없다. 걱정말아! 그러면서 내심 고민을 했다. 인제 다리가 한짝 없어졌으니나간대두 군인은 다시 못할 게구어떡헌다? 에라 모르겠다 문학의 길루나 한번 나가보자해서 안될 일이 있을라구! “

그는 낙천적이었지만 낭만적 혁명가는 아니다. 다만 극한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극복해 내는 방법이다. 세상을 살아내는 또 하나의 대승적 깨달음이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독재가 아니다. 그것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20세기의 신화>가 그것을 대변한다. 이 작품으로 인해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10년간이나 옥살이를 하게 된다. 옥살이 하는 동안에도 젊은 시절 일본 나가사끼(長﨑) 형무소에서와 같이 전혀 전향서를 쓰지 않아 만기출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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