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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의문학]김학철 문학의 종반기- 마르크스 주의 신념과 노신문학 정신

김학철 문학의 종반기- 마르크스 주의 신념과 노신문학 정신 

김학철은 85세 임종순간 유언에서도 다시 밝혔지만 평생 마르크스주의 신념과 노신문학 정신을 고수해 왔다. 그 자신 75세 때 연변사회과학원 <문학과 예술>(1990.3월호) 대담에서 이러한 신념을 밝히 바도 있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이런 력사관에 근거한 문학형식입니다. 때문에 맑스주의가 없이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운운하는 것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짜 맑스주의와 가짜 맑스주의를 똑똑히 식별하여야 합니다.”

그는 197710년만에 만기 출옥하였으나 3년간 전과자로 더 묶여있다가 80년 최고법원에서 무죄확정이 되어서야 65세의 나이로 창작활동을 다시 재개할 수 있었다. 숨 고르기 3년 후 자전적 소설 <항전별곡>(1983)으로 다시 소설가로서 재기했다. 이어 역사증언 문제소설인 <격정시대>(1986)가 발표되었을 때는 그의 나이 70세가 되었다.

물론 톨스토이도 세계명작 <전쟁과 평화>를 쓴 것이 65세이다. 문학작품은 연륜에 관계가 없다. 오히려 세상의 연륜이 오래될수록 잘 숙성된 술과 같은 것이다. 이해에 정식으로 중국작가협회에 가입이 되었고 89년에는 중국공산당 당적이 회복되었다.

1988<격정시대> <해란강아 말하라>(한국 풀빛사) 등이 재판되었고 이듬해 <고봉기유언> <태항산록> <무명소졸> 등 신작이 한국에서 출판되면서 처음으로 부부동반 서울 나들이와 함께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 199478세 되던 해에 결국 한국의 권위 있는 KBS 해외동포상(특별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이해에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다. 이듬해 마지막 소설이 된 <최후의 분대장>을 발표한다. 이후 주로 자전적 산문집으로 이어진다.

그의 황금 같은 인생 50대 이후를 결정적으로 암흑의 시간으로 몰아넣은 <20세기의 신화>(창작과 비평사)가 한국에서 출판되었을 때는 이미 그의 나이 80세의 고령이 되었다. 누가 이 청춘을 보상해 줄 것인가. 저항문학가로서 비극적 공간이 메워지는 순간이다. 그는 이후 서울과 일본 등을 넘나들면서 산문집 <나의 길> <우렁이 속 같은 세상> 등 열혈적으로 발표를 한다. 한편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김학철문학전집>(5)이 나왔으나 계속 편집 중이다. 결국 2001년 석정(윤세주)연구 학술대회에 참가했다가 병을 얻은 것이다. <격정시대>는 열혈적인 젊은 시절 구국의 열망에 불타던 조선의용군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申師明김학철 <격정시대>의 주체적 민족주의 연구에서 주인공 선장이의 주체적 의식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선장은 조선의용대 제2지대에 중국공산당 지하조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조직에 있는 성재수는 서선장과 오쎌로를 믿음직한 동무들과 함께 사회주의자들의 활동무대인 해방구로 넘어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 선장은 해방구로 가는 도중에 태극기를 발견하게 된다. 애국가를 부르며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감격에 휩싸이게 된다. 그에게는 오로지 조국 조선의 민족독립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민족과 민족애에 대한 강렬한 영혼이 살아있다.”

선장이는 김학철의 분신이다. 자전적 소설로서 자신의 민족사상의 변이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황포군관학교 출신으로 蔣介石의 국민군 군관으로 있다가 어찌 태항산 팔로군 근거지가 있는 공산군으로 이전하게 되었는지 당시 시대적 상황을 증언해 준 것이다. 소설이지만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밝혀준 준 것이다. 김학철 개인뿐이 아니고 조선의용군 전체가 하루 빨리 일제 식민지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탈환해 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국민당 군은 항일에 소극적이며 내부가 부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의용군 거의 모두가 실망하였으며 그 대안으로 항일에 철저한 공산군과 협력이었다.      

그가 맑스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로 성장해 가는 가운데는 한편으로는 언제나 민족의식의 뿌리가 병행하여 성장하고 있었다. 그가 해방구로 넘어가 태항산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결국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열망이었다. 즉 그가 사회주의적 주체화된 인간으로  의식화되어가는 과정에서도 민족애와 민족의식이 때로 갈등화 되어 혼란되기도 했지만 결론은 늘 민족의식 쪽으로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    

신사명은 계속 말했다. “이러한 점에서 <격정시대>는 도식적인 혁명소설, 투쟁소설이라고 구분되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역사소설을 인류 보편적 예술성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중국 조선족 문학으로서 당대 대표적인 전쟁 역사소설로서 문학사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

김학철은 문학적으로 중국의 고리끼이며 정치적으로는 아시아의 솔제니친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정치적 비리와 모순 앞에서도 그의 붓끝이, 눈 끝이, 가슴 끝이 전혀 용서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역사적 모순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그래서 사마천도 궁형을 당하면서도 끝끝내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史記를 남기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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