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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아기

‘여자는 봄을 기뻐하고, 남자는 가을을 슬퍼한다.’
김상국 경희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박사


(뉴스시선집중/이용진 기자) 여자는 봄을 기뻐하고, 남자는 가을을 슬퍼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쉽게 이해되지만 한동안은 그렇지 않았다. 가을에는 먹을 것도 많고, 단풍이 아름다우니 구경 갈 일도 많지 않는가? 그런 가을이 슬프다니... 해당 사항 없는 말이다. 사실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아! 그런데 가을이 슬프다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게 되었으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언젠가 패션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과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이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하였다. “김 교수님, 여자분들이 가장 멋 내기 좋은 시절이 언제인지 아세요?”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한번 말씀해 주시지요.” 그분 대답이 ‘여자는 봄을 기뻐한다.’는 말과 어찌 그리 일치하는지. 그 전문가 말에 의하면 여자들이 가장 패션 적으로 뽐내기 좋은 시절은 봄과 가을 얇은 긴팔 블라우스가 어울리는 계절이라고 하였다. 들어보니 참 일리 있는 얘기였다. 

한 여름은 입는 옷의 양이 적어 옷을 입어 멋을 부린다거나, 악세사리를 걸치기가 적당하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겨울도 옷이 너무 두꺼워서 여성스러운 하늘하늘한 옷에서 나는 다양하고 섬세한 멋을 내기 힘들고, 악세사리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봄은 그리고 초가을은 너무너무 다양하고 화사한 색깔, 디자인, 악세사리 등을 사용할 수 있어 패션의 입장에서는 최고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아마추어인 나에게도 충분히 이해가는 소리여서 “그렇겠군요.”하면서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봄, 가을 중에서도 왜 봄이 더 여성들이 기뻐하는 계절일까? 거기에는 또 다른 생물학적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자식을 낳는 것이다. 즉 종의 번식이다. 그런데 겨울은 춥고 움츠릴 수밖에 없다. 모든 기능이 떨어진다. 비활동성의 계절이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 봄은 어떠한가? 만물이 살아나는 계절이다. 동물도 식물도 물이 오르고, 일년 중 가장 꽃이 많이 피는 계절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시기다. 더욱이 봄 다음은 여름이다. 여름은 그야말로 성장의 계절이다. 봄에 꽃을 피워 수정을 하여 여름에 힘껏 자라게 해야 가을에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그러니 봄은 얼마나 중요한 계절인가? 그래서 봄에는 그렇게 많은 꽃들이 피고, 벌 나비 새들은 또한 그렇게 바쁜 것이다. 그럼 벌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꽃은 어떻게 피워야 할까? 예쁘게 피어야 한다. 향기도 품어야 한다. 가능한 다양한 색으로 치장하면 더 좋다. 그러니 온 세상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럼 이런 변화는 동식물에게만 해당될까? 아니다. 결국 사람도 동물이다. 더 오랜 기간으로 얘기하면 식물로부터 진화해 동물이 되었을 뿐이다. 학자들 말에 의하면 식물과 인간의 DNA는 약 50% 일치하고, 오랑우탄과 인간은 98% 일치한다고 한다. 단 2%의 DNA 차이로 인간과 유인원으로 갈라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떻든 이런 이유로 인간도 자연의 순환에는 본능적으로 따라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점점 문화가 발전하면서 먹고 살고, 종을 번식하는 것은 이미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즐기는 것, 재미있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다. 그런데 봄이 되어 시절도 따뜻하니 몸과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계절이 좋아 꽃도 여기저기서 봄 내음을 자랑한다. 게다가 얇은 긴 소매 정도를 입으면 별로 춥지도 않다. 나다니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더욱이 화사한 옷, 아름다운 장신구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찌 여심(女心)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만약 이럴 때도 춘심(春心)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 모르겠다. 이런 전차로 여자가 봄을 기뻐하는 것은 너무 너무 당연한 이치다. OK! 그런데 왜 남자는 봄에 대해 무감각할까? 아니다. 남자도 무감각하지는 않다. 

특히 젊은 남성의 경우에는 더 그럴 것이다. 내가 여기서 남성이라 함은 나이가 조금 든 남자를 말한다. 오해 없기 바란다. 어떻든 나이든 남성의 경우에는 올해에 벌어질 부담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지? 이런 저런 이유로 작년에 참 해결이 안됐었는데… 금년에는 큰 놈이 대학을 가는데, 결혼을 하는데 등등. 봄이 남자의 마음도 화사하게 하지만 이런 걱정들이 먼저 눈앞에 떠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 아마 이것은 나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남자의 경우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몇해 전 봄날에 있었던 일이다. 학교 앞에 제법 멋지게 꾸며진 레스토랑이 생겼다. 이럴 때는 식당이 아니라 레스토랑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 

외부 손님을 대접할 일이 있어 방문하였다. 조금 논란의 여지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상호 이해가 쉽게 되어 금방 얘기가 끝났다. 한가로운 마음이 들어 그제야 주위를 보고 우리 서로가 깜짝 놀랐다. 30여개의 테이블이 있는 작지 않은 식당, 아니 레스토랑이었는데 손님 중에 남성 팀은 우리밖에 없고, 남성이 낀 팀이 두 테이블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여성분들이었다. 그리고 어찌 그리 재미있는 분위기로 얘기하는지 부러운 마음을 가득 품고 식당을 나온 기억이 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왜 남자는 가을을 슬퍼하는가?’를 말해 보자. 아마 중년이 상당히 지난 또는 나처럼 정년퇴임을 한 사람들의 얘기인지 모르겠다. 즉 인생이 가을에 접어들었거나 이미 늦가을이 된 사람들의 얘기일지 모른다는 말이다. 

 일도 많이 했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성취도 했다. 그러나 왠지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 남은 날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단풍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올해도 이미 지나갔구나.’하는 생각이 함께 든다. “또 한해가 벌써 지났나?”하는 생각이 같이 떠오른다. 조금 쓸쓸하다. 왠지 가을이 슬픈 느낌이 든다. 이래서 남자에게는 가을이 슬픈 계절인가 보다. <<후기>> 엊그제 전통시장에 갔다. 아직 조금 철이 일러서인지 가을 과일이 풍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올 과일들은 다 나와 있었다. 

그래서 하나를 샀다. 홍시 감이다. 나에게 있어 가을의 상징은 빨간 홍시감이다. 게다가 대봉 홍시감은 보기에도 좋다. ‘자알’ 생겼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자알’ 생긴 감을 하나 골라 접시에 놓고 책장 한가운데를 치우고 예쁘게 올려놓았다. 예쁘다. 보기 좋다. 이러고 나니 마음이 다시 옛날 가을이 풍성했던 시절로 돌아왔다. 그래 내 나름대로 즐기면 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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