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螺鈿漆器)와 칠(漆)공예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아시아의 옻칠(漆)과 칠공예 문화를 보기 위해특별전에 참석을 했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각 나라에서 발전한 다양한 칠공예 263점을 볼수 있었다. 칠공예하면 경남 통영의 나전칠기(螺鈿漆器)가 생각나고, 신문이나 TV를 통하여 칠공예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40여년 전 가정마다 자개장이 많았는데 이 가구가 칠공예였다.
나전칠기는 옻칠한 그릇이나 가구의 표면 위에 나전이라 불리는 전복·조개·소라 껍데기를 얇게 갈아 여러 가지 문양으로 박아 넣어 장식한 공예품이다. 조선 시대 나전칠기는 국가에서 관리하여 서울에서만 생산하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수공예품의 제작체계가 바뀌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통영에서 나전칠기가 생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옻나무의 수액인 옻칠은 예로부터 아시아 각지에서 사용해 온 천연 도료로서 방수·방충 등 물건의 내구성을 높이고, 광택을 더하여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내구성과 장식성을 높이는 옻칠은 옻나무가 자생하는 아시아 지역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미얀마 등에서 중요한 공예품 제작 기술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칠공예로 피어났고, 옻칠은 천연 도료로 독특한 공예품이다.
한국에서는 얇은 조개껍데기를 오려 붙이는 나전칠기, 중국에선 여러 겹의 옻칠로 쌓인 칠층(層)을 조각하는 조(彫)칠기, 일본에선 옻칠 위에 금가루를 뿌리는 마키에(蒔繪) 칠기가 활발히 제작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대표적인 공예품은 중국 전한의 ‘칠 새와 구름무늬 접시’와 12세기 고려의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 합’ 등이다.
일제강점기 통영에 1907년 통영군립공업전습소가 설치되어 나전칠기의 기술적인 혁신과 인력 양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1925년 프랑스 세계장식미술박람회에서 통영 나전칠기가 은상과 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65년 전, 경상남도 통영에 나전칠기 기술원양성소가 설립되어 우수한 장인들을 배출하였고, 이들은 1960~80년대 전국 각지에 나전칠기 자개장롱 열풍의 주역이 되었다. 그리고 주거공간이 아파트로 변하여 서양식 가구가 보급되면서 점차 통영 자개의 열풍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칠공예는 시간의 예술로 옻나무에서 옻칠을 채취하고 정제하여 도료로 만드는 것과, 물건에 옻칠을 하는 것은 반복되는 인내의 시간을 필요하다. 우리 앞에 놓인 작은 칠기 한 점은 시간의 흐름을 켜켜이 쌓은 결정체이고,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내고 만든 작품이다. 옻나무 덕분에 각 나라 취향에 맞게 칠공예가 꽃을 피웠다.
마지막 전시장에 최근에 개발한 정혜조 공예가의 ‘오방색광율’ 작품의 재료는 삼베와 옻칠인데 너무 아름다웠다. 오늘날 옻칠이 가진 도료 및 장식 재료로서의 물성, 칠공예의 역사와 예술성이 새로웠다. 그리고 김설 공예가의 ‘붉은 협제철 오브제’는 삼베, 옻칠, 나전, 목재를 활용한 예술품으로 시각과 관점으로 많은 변화를 보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옻칠은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예술로 거듭나고 있어 반가웠다. 우리의 나전칠기와 칠공예 예술품이 또 새롭게 태어남을 확인했으며 세계인이 사랑하는 우리의 공예예술을 잘 지키내자. P.S. 이 원고는 3100자이지만 지면관계상 1700자로 올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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